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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반티카 May 16. 2024

서서는 앉고 싶고, 앉으면 빨리 앉았음 좋았을걸 싶고

2024 21일 루나 디톡스: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사함 명상 에세이 #9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요. 열 시 좀 넘어서 미술 학원에 갔는데, 집에 돌아오는 지금은 벌써 저녁이에요. 퇴근 시간 생각하면 좀 더 일찍 나왔어야 하는데!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에 발을 들이면서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손에 든 짐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아이패드가 든 백팩이 상당히 무겁지만요. 아이패드 거치대를 같이 가지고 다니다 보니, 둘의 무게를 합치면 노트북보다 더 무겁답니다. 이런 걸 사서 고생이라고 하는 걸까요? 


환승하는 역에선 내리는 사람이 많아 앉을자리가 생기곤 하는데, 오늘따라 그렇지가 않았어요. 누군가가 일어나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다들 참 빨라요. 가방은 무겁고, 목은 점점 앞으로 기울어 거북목이 되고.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드디어 자리가 생기고, 앉아서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니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내리는 역이 얼마 안 남은 게 조금 슬펐지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해요. 서서는 앉고 싶고, 앉으면 빨리 앉았음 좋았을걸 싶고. 


이런 생각이 들 땐, 숨을 고르면서 감사한 걸 찾아요. 그렇지 않으면, 불평이 이어지기 십상이거든요. 왜 내 앞자리만 비지 않을까, 오늘따라 운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난 늘 운이 없었지... 등등,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찬 불평. 그때그때 내용은 다르지만 좋은 하루를 보내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서너 정거장이라도 앉아서 가는 게 어디야.' 

'어쩌면 내릴 때까지 자리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 이렇게 지하철에 사람이 많을 땐 특히!' 



글에도 넣을 겸 앉은 걸 기념해 사진을 찍었더니, 앉아있는 게 더 좋게 느껴졌어요. 신기하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라나던 불평이 사라지고 어느새 내릴 때가 되었어요. 마침 엘리베이터 앞에 내려, 막 내려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조금 걸어가니 막 문이 열리는 또 다른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어요. 


엘리베이터 타는 시간이 딱딱 맞으니, 아이패드를 이고 어깨 아프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참 좋았어요. 나가는 출구 쪽엔 엘리베이터가 없지만, 무거운 가방을 메고도 힘차게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무릎 상태가 좋아진 것도 감사한 일이었어요. 


감사함을 찾고, 음미하다 보면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이 빨리 끊어져서 좋아요. 저녁을 신속하게 준비할 수 있고, 식사할 때 음식의 맛과 식감이 느껴지고, 또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잠깐 보면서 웃는 시간도 보낼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곧 밤에 나누게 될 글을 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걱정 없이 집중해서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여러분도 순조롭게 흐르는 하루를 보내셨길, 내일도 모레도 보내실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요. 그런 하루하루의 흐름을 만드는 데 가장 쉽게, 적은 시간을 들여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감사함 명상이라고 생각해요. 꼭 눈을 감고 하지 않더라도, 숨 쉬며 걸어가면서도 할 수 있어요. 물론, 조용한 공간에서 눈을 감고 하면 더욱더 집중도 잘 되고, 감사함의 맛도 더 잘 느껴지죠. 


왜인지 모르겠는데 지나가고 있는 오늘이 의미 없게 느껴지거나, 지루하거나, 허무하세요? 그럼, 쌀알 한 톨만큼 작은 감사함이라도 하나 찾아보세요. 쌀알 한 톨이 땅에 심기면 그 속에 담긴 생명이 싹터 벼가 되고, 그 벼에서 수많은 쌀알이 다시 태어나요. 쌀알 한 톨만큼의 감사함도, 수많은 감사함을 태어나게 해 줄 거예요. 쌀알이 싫으면, 하늘 위 별빛만큼 작은 감사함은 어때요? 우리 눈에만 작게 보이지, 별은 사실 굉장히 커다랗잖아요! 


정말, 뭐든지 찾아보세요. 밤은 길어요. 아직 늦지 않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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