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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윈드 Oct 22. 2022

한 해를 기억하는 어떤 방법 3

7월. 계절은 빠르게 지나가며 여름은 깊어지고 날씨는 점점 더워집니다. 그런데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초록색은 더 진해지고 꽃들도 연달아 피어납니다. 쉬땅나무의 꽃은 마치 진주 같은 꽃봉오리가 깨어지며 꽃이 되는 듯합니다. 가지마다 가득 피어있는 아이보리색의 꽃들은 마치 은하수 같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긴 꽃술들은 별들이 발산하는 어떤 빛 같기도 하고요.      


강렬한 칠월의 햇살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뜨겁게 달구는 듯도 합니다. 나무 그늘에서는 꼬리조팝의 진한 분홍색 꽃이 잠시 더위를 식히는 듯하네요. 그런데 산책자가 보기에는 꽃 자체가 더 뜨거운 향기를 뿜어내는 듯도 합니다. 연한 분홍색 꽃잎에 흰색 솜털이 보송보송한 박주가리의 꽃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커다란 매자나무의 가지를 타고 올라가며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군요. 다가가서 향기를 맡아보니 강렬한 느낌에 어찔해집니다. 그런데 매자나무의 꽃들은 벌써 붉은 열매가 되어 익어가고 있군요.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며 한 여름의 열기를 식혀줍니다. 습기 가득한 숲에도 삶이 있군요. 칡넝쿨의 거미줄에는 빗방울과 함께 분홍색의 칡꽃이 달려있습니다. 여름날은 여전히 무더운데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말없이 흘러갑니다. 담벼락에서 피어오르는 메꽃에서는 힘찬 트럼펫의 울림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밝게 내리쬐는 햇살은 연분홍의 꽃잎을 투과하는 듯도 하네요.        


     

8월. 날씨는 무덥지만 숲 속에서는 싸리나무의 꽃들이 한창입니다. 가느다란 가지마다 작은 분홍색 꽃이 꽤 많이 피어있네요. 긴 가지를 따라 산책자에게 다가오는 꽃과 인사를 해봅니다.      


     

긴 원통 모양의 염주괴불주머니 꽃은 노랗게 피어있습니다. 괴불주머니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장식용 노리개라고 하던데 뒤쪽의 올록볼록한 모양의 씨방은 이름대로 염주 같기도 하네요.      


올여름의 기록적인 장마 속에서도 꽃들은 피어납니다.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긴 줄기를 따라 작은 꽃들이 한 아름 피어 꽃다발이 되었네요. 댕댕이덩굴의 꽃이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한 송이는 허공에 피어있는 듯도 합니다. 잎은 벌써 노랗게 물들어가기도 하네요.     


9월. 맑게 갠 구월의 어느 날 아침은 조금 선선해진 듯하고 햇살도 조금 부드러워진 듯합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은 한가롭게 떠다니는데 초록빛으로 커가던 꽃사과가 점점 붉게 익어가네요. 이렇게 가을이 다가오는 것일까요? 풍선덩굴의 작은 꽃들이 하얗게 피었는데 어떤 꽃은 벌써 풍선이 되었습니다. 마치 종이 접기로 만든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으니 부풀어 오르는 듯도 합니다.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한 전략일 텐데 커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네요.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애기 나팔꽃이 맑게 피어납니다. 여리여리한 하얀 꽃의 가운데에 분홍의 포인트가 인상적입니다. 어느 이슬비 내리는 가을날 아침에 방글거리는 아가의 미소를 보는 듯하네요. 좀작살나무의 작은 꽃들이 연두색의 열매가 되더니 벌써 이렇게 보라색으로 익어갑니다. 길게 늘어진 가지마다 보랏빛 열매들이 굴러 내려오는 듯합니다. 색깔이 점점 진해지는 열매들을 보니 점점 가을이 실감이 납니다.      


초록의 잎과 빨간 열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문득 초가을의 색깔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고 보니 초록으로 커가던 낙상홍의 열매는 벌써 이렇게 빨갛게 익었네요. 꽃은 연달아 피어나며 열매가 되고, 열매는 또 진하게 익어갑니다. 흰 구름이 떠가는 파란 하늘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군요. 초가을의 저녁은 이렇게 시원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듀엣 '산들바람은 불어오고(che soave zeffiretto)'를 들어봅니다. 그런데 이 멋진 영상에서는 노래를 두 번 듣게 되니 더 좋군요. 멋진 멜로디를 부르는 그녀들의 목소리는 시원하고, 산책자의 마음은 더욱 상쾌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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