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미미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멀리서 구구 거리는 비둘기 소리가 들리는군요. 어제 환하게 피어있던 꽃댕강나무가 다시 보고 싶어 집니다. 다 마셔버린 커피 잔을 내려놓고 잠시 나서봅니다.
흐린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고 햇살은 멀리 있군요. 바람은 약하게 불어오지만 피부에 닿는 미세한 습기가 시원합니다.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땅이 촉촉합니다. 비에 젖은 초록 잎들은 빗물에 반짝이고 긴 풀잎에는 빗방울이 달려있네요. 멀리 앉아있는 듯한 작은 키의 나무들도 고즈넉합니다. 고요한 아침 풍경에 왠지 편안해집니다.
아직 빗방울을 간직하고 있는 꽃댕강나무의 하얀 꽃들이 싱그런 느낌입니다. 갸름한 초록 잎에도 붉은 가지에도 빗물이 담겨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산책자를 반겨주는 그녀의 해맑은 미소에는 향기가 가득하네요. 어느 꽃은 산들산들 치맛자락을 가볍게 펄럭이며 멋진 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다른 꽃은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르는 듯하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듯도 하네요.
작은 숲 속에는 빗물을 담은 초록 잎이 줄을 지어 내려옵니다. 빗물에 젖은 붉은 매자도 함께 사뿐사뿐 걷는 듯합니다. 잎은 빗물에 반짝이는데 매자의 얼굴은 많이 붉어졌네요. 수줍음이 많은 그녀일까요? 그런데 허공을 날아가는 듯한 그녀들의 상쾌한 춤사위가 느껴집니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달고 있는 것은 눈물이 아니고 빗물이군요.
초록 잎 사이에 한 알의 하얀 보석이 빛나는 듯합니다. 크지 못한 동생들은 검게 변하고 또 다른 언니들은 땅으로 돌아갔지만 그녀는 외롭지 않은 듯합니다. 한 알만이 남아있는 흰 말채나무의 하얀 열매는 마지막까지 투명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네요. 이슬비가 내리나 봅니다. 작은 물방울들이 진주 같은 하얀 열매를 간지럽히는 듯합니다. 안개 같은 미세한 물방울은 산책자의 얼굴에도 다가오는군요.
빗물이 가득한 초록 우산 아래에 연한 보라색 닭의장풀이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 꽃잎에는 빗방울이 가득하네요. 그런데 그녀도 비가 싫지 않은지 생긋 웃어 보이는군요.
가까이에는 가는 줄기가 하늘을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땅 쪽에는 노란 꽃이 피어있고요. 비록 빗물이 튀어 꽃잎에 얼룩이 졌지만 활짝 웃고 있네요. 비를 맞으면서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를 보니 그녀는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모양입니다.
줄기 한쪽에서는 힘이 가득해 보이는 꽃봉오리가 솟아오릅니다. 안으로 에너지가 모아가다 어느 날 문득 활짝 웃으며 피어나겠지요. 벌써 열매도 맺고 있군요. 피부가 오돌토돌한 걸 보니 여주인가 봅니다. 이제 비를 맞았으니 다시 햇살도 받으면서 점점 커가겠지요. 그리고 노랗게도 주황색으로도 익어갈 듯합니다.
그런데 자연의 풍경을 보면 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요? 알고 보면 수풀 속에도 치열한 삶의 경쟁이 있는데 말이지요. 어쩌면 마음이 편안해서 자연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사람의 마음은 물결과 같아서 수없이 흔들립니다. 내재된 수많은 감정들은 때에 따라 요동치기도 합니다. 기쁨과 슬픔, 좋아함과 싫어함, 사랑과 미움 같은 감정이 뒤섞이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는 많은 농도 차가 있지만요. 사실 수많은 인생 선배들도 고민했고 깨달음을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는 끄덕여지면서도 마음은 따라가지 않기도 합니다. 감정의 균형을 잡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듯합니다.
다시 생각하니 자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는 듯합니다. 비록 치열하지만 자연은 스스로의 균형을 잡아가며 조화를 이루거든요. 어렵지만 그렇게 균형을 잡아가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쳐주는 듯합니다. 어쩌면 자연을 보며 살아가야 할 이유 같기도 하네요.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고 햇살이 나오니 세상은 다시 환해졌습니다. 초록 잎에 밝은 햇살이 비치며 땅에는 그림자를 만들고 있군요.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마치 친한 친구가 피아노를 치는 듯한 연주로 들어봅니다. 맑은 피아노 소리와 잔잔한 멜로디에 마음이 더욱 편안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