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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렛이 돌아가고 나는 발랄하고

꽂히기를 간절히 원했던 날들에게

by 최규리

룰렛이 돌아가고 나는 발랄하고



최규리




공중을 날아오를 때는

비장한 각오라든가

기적이라든가 하는 말은 거두자


표적이 되는 것

혹은 표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

양쪽 모두 동일한 감정으로 치닫고

이미 시작된 속도에 휘말려


어디든 튕겨 나가는 발랄함을 지녔다


자주 빗나가는 실수가

땅에 곤두박질치고


다시 한번만

실격을 기회로 만드는 재주가 탁월해서

화살을 거머쥐고 회전판을 향해

실력인 줄 알고


기준의 잣대는 자주 너그러워졌다

잠깐의 규칙은 바람을 가르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공중은

돌이킬 수 없다


선을 긋는다는 것

혹은 선을 넘는다는 것

양쪽 모두 동일한 출발점에서

가슴을 위로하고


둥글게 다가오는 정오의 시계처럼


예상 가능한 여름은 오지 않는다

설레임은 예고 없이

무례한 이벤트를 가져온다


목표물은 늘 무서웠다

꽝이 걸릴까 봐

물이 넘칠까 봐


여름이 둥글게 보이는 것은

물체를 튕겨내기 때문일까


꽝을 숨기고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판은

행운의 열쇠를 쥐고

언제라도 기적이 올 것처럼

경쾌하게 돌고

나는 설레이고


언제라도 행운을 잡을 것처럼

인생은 한방이라고


몸을 던지고

물에 잠기고


한 번 꽂히면 죽어라 달려드는 참 좋은 버릇


어디라도 꽂혀야 하듯

어디서나 튕겨 나올 수 있는


땅에 떨어진 사람들


사선으로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불어나는 사람들과

넘쳐나는 물의 속도로


표적은 단단한 고딕체였어 각을 세웠지

여름의 한 철은 뜨거웠던 착각

균등해 보이는 회전판은 가짜였는지도


꽂히기를 간절히 원했던 날들에게


우리는 잠시 신이 되었는지도*




*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 유희경의 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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