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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리 Oct 30. 2024

프랜시스 베이컨*이 저녁을 준비하며

깊은 고립은 잘 떨어지지 않아

프랜시스 베이컨*이 저녁을 준비하며

 


최규리

 


  지방을 제거하기 위해 칼을 뽑는다 간 떨어지는 이야기가 기다린다 복도를 걷는다 복도는 복도의 기분이 있다 어떤 방향인지 모르게 한다 문을 연다 실험실이다 주방이 필요했는데 상관없다 물컹이는 물체를 내려놓는다 맛있는 표본을 만들어야지 핀으로 사지를 고정한다 가슴에 선홍색 핏방울이 맺힌다 하얀 와이셔츠를 벗는다 피를 묻히기 싫다 배를 가른다 내장들이 꿈틀댄다 날것의 생생함을 촬영한다 잊지 않도록 기록하고 보관한다 영상을 폐북에 올린다 캡처한다 내가 정지되었을 때 빼앗긴 날들은 벽에 걸렸다 박제처럼 살아온 날들이 수집되었다 액자 안의 얼굴이 조각난다 밤을 가른다 납작해진 얼굴에 생기를 넣자 입맛이 돋는다 육즙이 흐른다 금속으로 긁는 소리가 난다 선반 위에서 유리병이 흔들린다 유리병 안에는 술에 잠긴 뱀이 잠을 자고 있다 밀폐된 몸이 용기를 갖게 한다 누군가의 머리를 냉장고에 넣어둘 용기와 다리 한쪽을 강가에 버릴 용기를 준다 연쇄적으로 손목이 발목이 생겨난다 용기에 담긴 얼굴이 선반에 있다 썩지 않도록 잠에 담겼다 늑골에 달라붙은 조직은 제거되기 어렵거든 깊은 고립은 잘 떨어지지 않아 잘 도려내려면 잘 연마된 칼이 필요해 질긴 감정을 훼손한다 누렇게 달라붙은 안쪽을 썬다 여름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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