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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초이 Jul 16. 2022

수제 스크래쳐 만들기

[신비의 도로의 신비]

이사 온 지 6개월이 지나고도 부족한 게 많았다. 예를 들면, 김칫물이 들지 않는 도마, 주름을 방지하는 논슬립 옷걸이, 여분의 라탄 빨래 바구니 같은 것. 없어서 안될 건 없지만 또 있어서 나쁠 것도 없는 용품들을 오늘의 집이나 쿠팡, 네이버에서 여러 날에 걸쳐 주문했다. 배송은 미뤄 놓은 빨랫감을 세탁기에 밀어 넣듯 한꺼번에 되는 편이었다. 자연히 알맹이를 잃은 크고 작은 상자들이 물부엌에 차고 넘쳤다. 신비의 자녀들이 스윙칩 카샤카샤를 좋아했지만 신비를 위한 게 없어 마음에 걸리던 찰나. 택배 상자를 이용해 스크래쳐를 만들기로 했다.


스크래쳐 종류는 박스형, 원형, 수직형 등 다양하다. 나는 선배 집사 유튜버의 가르침을 따라 원형 스크래쳐에 도전했다. 순서는 이렇다. 일, 택배 상자들 중 가장 상태 좋은 것들을 고른다(보통 무거운 물건을 담았던 상자들이 두껍고 골도 촘촘해 쓸만하다). 이, 태초의 상태로 펼쳐 놓는다. 원하는 높이를 정해 자를 대고 펜으로 긋는다. 나의 경우 6cm 간격을 정했다. 삼, A4용지 뭉텅이를 정리할 때처럼 골판지 가닥을 가지런히 모아 바닥에 툭툭 털어 모아놓는다. 사, 골판지 가닥을 김밥을 말듯이 만다. 이때 중요한 건 악력이다. 아주 팽팽하게 말릴 수 있도록 손아귀 힘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 오, 한 가닥이 말리면 끄트머리에 박스용 테이프를 붙여 고정하고 새로운 가닥을 이어 붙인다. 육, 일부터 오까지를 원하는 만큼 커질 때까지 반복한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가내수공업이 반나절 가량 걸렸다. 거실 바닥엔 종이 가루가 먼지와 뭉쳐 풀풀 날리고 손끝의 감각은 무뎌졌다. 완성된 스크래쳐를 보니 어깨너비만 했다. 묵직한 게 신비도 안정적으로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테이프 냄새가 심한가 싶어 킁킁 냄새도 맡아보았는데 상자 냄새가 더 심했다. 후루룩 바닥을 쓸고 닦은 후, 스크래쳐를 옆구리에 끼고 오늘치 밥을 들고 신비네로 향했다. 신비는 보이지 않았다. 신비야아 하고 부르니까 뭔가 툭, 하고 떨어지더니 그게 신비였다. 신비 앞에, 신비가 자주 앉아있는 책상 위에 스크래쳐를 올려놓았다. 신비는 경계하듯 스크래쳐 냄새를 맡더니 그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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