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타초이 Jul 17. 2022

이름 붙이기

[신비의 도로의 신비]

며칠이 지났지만 신비네 아기 고양이 숫자를 파악하지 못했다. 어느 가을 결심했다. 기다려야지, 아가들이 더 이상 꼬물꼬물 나오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아침 10시에 출발해 밥을 채우고 물을 갈아주고 여느 때와 달리 멀찌감치 떨어져서 기다렸다. 10분, 20분, 30분, 40분. 총 6마리 아가들이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다른 아기들과 뒹굴었다. 한 시간이 넘게 지켜보았지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기자가 되면 귀대기라는 걸 한다고 들었다. 귀대기는 말 그대로 문이나 벽에 귀를 대고 듣거나, 안 듣는 척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슬금슬금 수집하는 것을 총칭한다. 귀대기로 나만 포착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때 이만큼 뿌듯할까. 나는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여섯 마리나 된다고? 어떡하니…”

안타까워하는 엄마와 달리 난 6이라는 숫자가 대수롭지 않았다. 오히려 냉장고 꼭대기에서 점프하고, 뜯긴 기둥 밑에서 머리를 디밀고, 쌓인 물건들 사이에서 쏘옥 몸을 빼 밥그릇을 향해 다가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들려줬다. 사료를 좀 더 챙겨줘야겠어. 7마리나 되는데 지금은 너무 부족해. 엄마는 네 인생부터 책임져야지 않겠냐는 듯, 그래 싸고 양 많은 걸로 바꿔야겠다, 고 했다. 그때 나는 울트라 프리미엄이라는 부제가 붙은 사료를 주고 있을 때였다. 백수였지만, 밥은 든든하게 챙겨줄 거란 자신감이 직장인이었던 과거에서 새어 나왔다.


이름은 뭐라고 지을 거야? 동생이 물었다. 그래, 이름을 지어야지. 두 가지가 떠올랐다. 모던 패밀리와 무한도전. 두 옵션 모두 나와 동생이 수년 간 수십 번씩 돌려보던 최애였다. 모던 패밀리는 가끔 말도 안 되는 차별적인 장면들이 나오지만 포기할 수 없는 웃긴 장면들이 무수히 존재했다. 무한도전은 지금 보면 폭력적이라고 느껴지는 기획과 언행들로 점철되지만 비슷한 수준으로 폭력적이던 10대 후반을 떠올리게 했다. 신비를 만났을 땐 한창 모던 패밀리를 보고 있던 시기여서 이름을 영어로 지을 생각이었다. 제이, 클레어, 필, 앨릭스, 루크, 헤일리, 글로리아, 매니, 릴리. 옵션도 많아서 좋았다. 하지만 엄마도 부르기 쉬워야 하잖아? 어머, 그러고 보니 무한도전도 최초엔 6명이 시작했네?! 결국 무도를 택했다.


이름은 보이는 순서대로 붙였다. 항상 신비 옆에 꼭 붙어서 밥을 먹었던 통통한 녀석은 명수가 되었다. 명수는 고등어의 정석이다. 흰털이라곤 하나도 없는 짙은 고동색과 갈색 줄무늬가 화려했다. 발바닥도 핑크가 아니라 까망 젤리였다. 다음으로 자주 보이던 녀석은 재석이. 나이순이라면 준하라고 붙여야 맞는데 왠지 모르게 ‘재석’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래, 너는 앞으로 재석이다. 재석이는 명수와 달리 마르고 날렵하다. 매점을 가린 농업용 까만 비닐을 타고 성큼성큼 천장까지 올라가는 아이였다. 왠지 꼭 맞는 이름을 붙여준 것 같다. 재석의 등은 갈색과 옅은 노란색의 줄무늬가 있지만 코와 입, 배와 발은 흰색이다. 특히 흰 발은 마치 손가락장갑을 낀 것처럼 발가락 빼고 하얗다. 무늬의 우연한 아름다움.


이쯤 되면 준하, 형돈, 하하, 홍철이가 누구인지 궁금할 수 있겠다. 아쉽지만 나도 아직 제대로 안면을 트지 못했다. 가끔 가게 옆 창고처럼 쓰는 낮은 천막 밑에서 벌름 거리는 콧구멍을 마주하거나 풀숲에 숨어 삐약 삐약 우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곧 만나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전 07화 수제 스크래쳐 만들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