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도로의 신비]
*지금부터 나올 이야기는 다소 징그러울 수 있으니 심약한 분들은 글을 읽는 데 주의하시길 바란다*
제주에 살면서 서울에선 보지 못했던 동물을 본 적 있다. 예를 들면 도마뱀. 당시 지내던 집의 외벽은 새하얀 칠이 되어 있었는데, 항상 현관문 손잡이며 베란다 창문 근처에 검지 손가락 만한 도마뱀이 있었다. 작아서 귀여웠다. 닭 무리를 본 적도 있다. 중산간엔 아침과 밤에 짙은 안개가 깔리곤 하는데 그날도 그랬다. 아스팔트 위에 깔린 안개가 채 가시기 전, 고요하고 신비로운 어느 날 아침. 밥을 챙겨주고 신비네 앞에서 가만히 멍 때리고 있던 중 옆으로 뭔가 지나갔다. 수탉과 암탉, 병아리까지 대략 10마리쯤 되는 닭 무리가 숲에서 나와 졸졸졸 차도를 건너는 것이었다. 몇 분 뒤 차도를 되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닭도 산책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신비 집에서도 처음 보는 형태의 동물을 보았다.
때는 신비와 안면을 튼 지 한 달쯤 된 어느 날이다. 신비와 아이들을 만난 후 규칙적으로 불규칙하게 일어나는 백수에서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백수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10시가량, 삐그덕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신비가 어디선가 톡, 하고 내려왔다. 해가 떴지만 구름이 껴서 그런지 내부는 어둑했다. 공중 화장실에서 수반을 씻어 새 물로 채우고 돌아왔다. 쪼그려 앉아 사료를 채우려고 그릇을 살폈다. 사료 그릇 주위로 개미가 줄을 지어갔다. 평소에도 주변에 사료 몇 알 씩은 흘렸고 개미들은 부스러기를 옮기느라 바빴으니, 이건 새로울 게 없었다. 그런데 11시 방향으로 까맣고 주먹만 한 게 있었다.
처음엔 똥인 줄 알았다. 참고로 난 시력이 좋지 않다. 난시가 심한 데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뭐든 자세히 보고 싶지 않았다. 고양이 똥을 본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멀찍이 서서 발로 그 까만 주먹을 뒤적였다. 어라? 가만 보니 털도 있고, 아니 발도 있잖아? 하는 순간 쥐란 걸 깨달았다. 마지막 뒤적임이 제법 세찼는지 쥐는 뒤집혔고, 안은 깨끗했다. 그러니까 내장이 털린 쥐였다.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걸 깨달을 새도 없이 꺄악 소리가 나왔다. 큰 소리에도 신비는 도망가지 않고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은혜 갚으려는 고양이가 쥐며 새 따위를 잡아서 갖다 주더라, 하는 이야기는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처음엔 나도 신비가 고마워서 쥐를 잡아다 준 줄 알았다. 하지만 갈라진 배 사이로 벌건 척추뼈와 털 붙은 가죽만 남은 쥐의 상태로 보건대, 신비는 이미 식사를 마친 것이다. 아, 나한테 빈 그릇을 갖다 준 거구나… 그랬구나, 그냥 치우면 되는 거였구나…. 장탄식.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다, 신비는 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되뇌며 버려진 전단지를 찾았다. 나름 빳빳한 전단지를 들고, 안경을 벗었다. 마치 죽은 바퀴벌레를 스을 건져 올리 듯, 전단지로 사체를 건져 근처 산에 버렸다. 읍, 이우(Eww), 이우(Eww), 읍, 이우(Eww), 이우(Eww)가 규칙적으로 새어 나왔다.
두 번째는 이 사건 이후로 3, 4일가량 지나서였다. 사료를 채우러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한 녀석이 사료 옆에 앉아 있었다. 명수였다. 명수는 나중에 신비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더라도 우선 숨고 보는 녀석이었는데. 이제 우리 조금 친해진 거니? 그새 조금 커 손바닥보다 가려지지 않는 명수가 귀여워 슬쩍 다가갔다. 역시 움직이지 않는 명수. 어머, 웬일이니! 하며 반가움 마음이 번지던 중 명수 앞에 놓인 내장 털린 쥐를 발견했다. 꺄악, 자동으로 나와버린 비명소리에 명수는 구멍으로 잽싸게 달려갔고 가게엔 나와 쥐만 남겨졌다.
처음과 같은 방법으로 사체를 처리하며 생각했다. 사료가 맛이 없나? 아니면 부족한가? 쥐가 더 맛있는 걸까? 사료 회사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이 정도면 쥐 맛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내 탓도, 신비 탓도, 사료 회사 탓도 아니다. 그냥 고양이가 사냥에 성공해 쥐를 통해 단백질을 섭취한 것일 뿐. 동물의 세계에서 사자가 식사를 마치고 난 뒤 누우의 뼈와 가죽만 남아 버린 것처럼 신비와 쥐도 그랬던 것일 뿐…. 알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