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도로의 신비]
“실례하겠습니다.”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나 인기척을 냈다. 폐점은 물론이고 주위가 조용했다. 한낮에 이 산속까지 올 사람은 백수와 고양이뿐이겠지. 잠깐 두리번거리는 찰나, 신비가 나타났다. 빵떡 같은 얼굴형에 이마에는 옅은 갈색 바탕에 짙은 고동색 줄무늬가 4갈래 있었다. 같은 패턴의 무늬가 등을 지나 꼬리까지 이어졌다. 입부터 배 안쪽과 왼쪽 앞발과 뒷발은 새하얀 게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무엇보다 통통했다. 그래 신비야, 너 이렇게 생겼구나. 찬찬히 신비를 관찰하다 눈을 마주쳤다. 활자로만 봤던 하악 소리가 들렸다. 머리론 가래 끓는 소리랑 비슷하네, 했지만 마음은 누군가 빨대로 쏙 빨아버려서 몇 방울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고양이가 침을 뱉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라마처럼 침을 퉤! 할 기세였다. 신비보다 내가 11배는 더 무거울 텐데, 하면서도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엄마도 처음 몇 번은 하악질을 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내 손엔 너를 위한 사료도 있다! 어깨를 웅크리고 도둑처럼 들어갔다.
폐점 안은 어두웠다. 밖은 이렇게나 찬란한데. 의자를 밀고, 스읍 숨을 참았다. 책상과 내려놓은 셔터 사이가 고작 두 뼘 남짓했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습하고 오래된 쿰쿰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공기도 차가웠다. 반대편에 깨끗하게 빈 즉석밥그릇이 보였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까 걱정되었는지 신비가 발밑까지 쫓아왔다. 행여나 신비를 칠까 봐, 그래서 날 할퀼까 봐 무서워서 무용수처럼 발끝으로 걸었다. 가게 끝에 쪼그려 앉아 컵에 담아 놓은 사료를 옮겼다. 차르르 사료 알갱이가 플라스틱 그릇에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다. 사료를 좀 더 많이 가져온 듯했다. 경계하듯 코를 갖다 대던 신비는 익숙하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ㅇㅗㅏㄱㅜㅇㅗㅏㄱㅜ
고양이는 밥을 이렇게 먹는구나. 강아지 두 마리와 15살까지 동거하며 무지개다리로 보낸 경험이 있으며, 5살 시각 장애견 강아지 집사로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성질 급한 강아지는 보통 씹지 않고 최대한 많이 한 입에 넣고 삼키거나(결국 컥컥거리므로 나중에는 한 알씩 손으로 급여하는 중이다) 까다로운 강아지는 고르고 고른 두세 알을 삼켜 먹어서 도통 씹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신비는 한 번에 가능한 한 많은 사료를 담기 위해 입을 왕 벌리고는 그걸 꼭꼭 씹어 먹었다. 씹는 내내 알갱이 부스러기들이 주변으로 떨어졌다. 아까웠다.
몇 알을 주워 다시 그릇에 담아주곤 밖으로 나왔다. 엄마의 경험에 따르면 아기 고양이들은 밖에 숨어 있어야만 볼 수 있었다. 새끼가 5마리라고 했는데, 그것도 정확하진 않았다. 처음엔 3마리라고 했다가 그다음엔 4마리, 그다음엔 5마리로 하루에 개체가 하나씩 늘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귀여운 새끼들을 빠짐없이 확인하고 싶었다. 모든 생명체는 아가일 때 그 귀여움으로 제 몫의 행복을 주변에 선사하니까. 가게 문 뒤에, 그러니까 쌩 지나가는 차에서 봐도 저기 누가 서있네, 할 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고양이는 동체시력이 뛰어나니까 움직이지만 않으면 되겠다. 그리고 그게 먹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