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후 Apr 22. 2024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하늘에서 아래로 지상에서 위로 온통 꿀 천지입니다

꿀이 떨어집니다. 하늘에서 온종일 온 세상에 은총을 내려줍니다. 축축이 아닌 촉촉한 피부가 돋보이는 식물들의 본색이 드러나는 월요일입니다. 단비가 내립니다. 꿉꿉해서, 뽀송하지 않아서 멀리했던 빗방울이 오늘은 왠지 다가가고 싶게 설렙니다. 이 무슨 조화일까요.

창가에 인위적인 빛이 아닌 비타민이 가득 함유된 자연 봄볕을 쬐게 놓고, 오가며 시간이 날 때마다 들여다봅니다. 남몰래 글라이더로 나타난 토실이들의 잎사귀가 언제든 비상할 준비된 듯 날개를 보여줍니다. 튼튼하진 않아도 작은 바람일지라도 날아오를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이 사뭇 몸통보다 큽니다. 그 춤사위가 볼수록 입꼬리도 미소로 위로, 위로 잡아당깁니다.

조금이라도 세파에 찌들지 말라는 양육자의 정성으로 바람을 담아 쌀을 씻고 모아둔, 하루 지난 뜨물을 가져다 놓습니다. 지구별의 탄소중립 모임에서 얻은 귀한 꿀팁을 실행하여 봅니다. 실천 휴머니즘을 즉각적으로 발휘합니다. 수돗물에는 없을 영양소가 뜨물에 잔류로 고여 있나 봅니다. 발아한 뒤 프로펠러 닮은 잎사귀에 이빨이 나왔습니다. 마치 아이가 이유식을 하면 나오는 그 유치처럼. 액상이 아닌 영양소를 주어도 작디작은 톱니 이빨로 씹어먹겠다는 의지의 표상일까요.

온 정성을 다해 키우다 보면 양육자는 남들이 볼 땐 거짓말을 한다고 할 수도 있는 새끼의 천재성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걸 또 온전히 믿게 됩니다. 토실이를 보면 씨앗에서 발아할 때부터 그 우주를 품은 신기함에 이이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볼 때마다 신통방통하여 오래 머물게 됩니다.

토마토를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사 먹곤 했습니다. 방울토마토는 특히 마리네이드로 만들어서 김치냉장고에 두고 조금씩 덜어 먹습니다. 그 상큼한 맛은 입안에서 살살 녹으면서 건강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팁이랄 것도 없는 것을 언급하면 블루베리를 얹어 같이 먹으면 더 건강한 맛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채소이자 과일인 토마토는 어설픈 베지테리언에겐 참 반가운 식재료입니다. 약방에 감초처럼 어떤 요리에도 잘 어우러집니다.

육류를 어릴 적에는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제게 엄마는 토마토를 여름내 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식성은 닮는가 봅니다. 2세도 토마토가 들어간 요리나 오로지 토마토만 먹기 좋게 잘라 설탕만 살짝 뿌려서 섞어준 것만으로도 잘 먹습니다.

토실이 다섯 남매 중 셋은 얼추 키가 비슷한데, 나머지 둘은 약간 작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토마토를 선택하게 했더니 큰 토실이와 작은 토실이를 사이좋게 고릅니다. 욕심 있는 아이가 큰 걸로만 고를 줄 예상했는데 의외였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은 토실이 하나를 잘 돌봐주어 남부럽지 않게 작아도 단단하게 키워보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나머지 토실이는 자연스럽게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봄비도 꿀처럼 반짝거리겠다. 토실이도 자랐겠다. 마냥 씨앗이 발아된 키친타월 위에서만 놀게 할 수만은 없습니다. 더 큰 물에 나가 놀게 하렵니다. 그래서 오늘 날궂이 한 번 해봅니다.

물기 있는 키친타월에서 토실이 하나씩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살살 분리합니다. 택배로 받은 작은 화분에 역시 동봉된 마사토를 아이의 모종삽으로 조금씩 떠 담습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토실이 하나씩 일정한 공간을 확보해 주면서 마사토 구멍에 안착시킵니다. 동봉된 질석을 얇게 전체적으로 뿌려줍니다. 질석을 손가락으로 살살 눌러줍니다. 토실이가 안정적으로 날개를 펼 수 있도록 활주로를 압력을 최소화하여 정돈합니다. 하루 묵힌 쌀뜨물을 스포이드를 이용해서 세심하게 공급해 줍니다.

촉촉한 봄비가 봄의 절정을 달리고자 숨 고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온갖 꽃들과 식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흙을 뚫고 나와 대지를 아름답게 수를 놓습니다. 식물들에게 생명인 살과 피를 나눠주는 꿀, 비입니다. 빈대떡 대신 토실이의 생장을 위한 큰 집으로 무사히 이주를 마쳤습니다. 쑥쑥 자라서 지금보다 몇 배 큰 방주인 화분에 이주할 날이 곧 오기를 아이가 기대합니다.

세상에 꿀들이 마구 떨어집니다. 내일이면 연두는 커서 초록해지고, 연분홍은 눈이 깊어져 꽃분홍이 되고, 아이는 자라서 사춘기, 청춘이 될 것입니다. 청년 같은 봄은 아직 무사합니다. 여름이 몹시도 빠른 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만 봄은 언제나 벌과 나비 그리고 사람들의 꿀 떨어지는 눈빛에 샤워할 것입니다.

꿀이 똑똑 떨어지는 아이의 눈빛에 토실토실한 토마토 형제들의 저녁은 단잠을 이룰 수 있을까요. 오늘 밤이 지나면 토실토실 물오른 토마토들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이제 겨우 밤은 시작입니다. 꿀이 잠잠해지면 뜨물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전 25화 탱크처럼 진격하는 출간의 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