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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May 06. 2024

오, 할 렐 루 야

싹 싹 싹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이 친구인 율이 쏟은 마사토를 쓸어 담은 작디작은 화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참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났다.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닿아야 겨우 지문에 붙어 딸려오던 토마토 씨였는데...

탄생의 신비까지는 아니지만 경이롭다고 할 수밖에 없는 풍각쟁이가 아닌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는 뛸 뜻이 기뻐 환호하는 중이다.


흥칫뽕이다!


토실이들의 싹이 나온 것은 기뻐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 지붕에 사는 토실 1,2 연인 탄생에 빈정 상하는 토실 3이 있었다. 둘이 좋아 하루종일 붙어 꽁냥꽁냥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토실 3은 눈꼴시다 못해 옆구리가 허전하기까지 하다. 사실 눈이 시린 것은 부러움의 발로이다. 자고로 콩깍지는 제 눈에 안경이다. 토실 3도 제 눈에 안경을 찾아 눈을 씻고 흙을 샅샅이 훑느라 허리가 휠 지경에 이르렀다.


"토실 3, 쥐구멍에도 볕 들나루 있다고 한다, 너에게도 좋은 짝이 곧 나타날 수 있어. 씨가 아직 둘이나 남았거든."

그렇다. 아직 씨가 마르진 않았다. 같은 지붕아래 어딘가에서 막 움틀 준비를 하는 씨가 있을지도 모른다.


 토마토씨는 과연 어떻게 발아한 걸까 그것이 알고 싶다


참 이상하다. 머리를 자꾸만 갸우뚱하는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에서 섬광 같은 필라멘트가 지나갔다. 아이의 눈에서 에디슨의 전등이 켜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물은 먹어야 발아하는 거 아닌가. 흙속에만 있다고 발아가 돼? 거 참 이상하네."

어른의 어설픈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 발아의 까닭이 나의 목을 모딜리아니 그림의 여인으로 만들고 있다.

"쌀뜨물 받은 페트병 화분 옆에 늘 두셨죠? "

"그랬지!"

"사실은 제가 그 쌀뜨물을 작은 화분에 조금씩 주곤 했거든요."

"그랬어? 그랬구나! 이건 기적이 아니라 정성에 대한 답변인 거네."

나는 아이의 머리를 흩뜨리며 이 모든 인과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기적은 없다, 단지 정성이  피워낸 불꽃일 뿐.


화분이 작았을 때는 거인 같았는데, 큰 화분에 활착 한 네 토실이 전사들이 조금은 작아 보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자고로 큰 물에서 놀아야 큰 물고기가 되는 법. 토실이 전사들의 날개가 온 화분의 지름을 가릴 정도로 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을 준다.


양육자의 잣대로 토실이 전사는 난쟁이가 되고 거인이 될 것이다. 내가 누워서 본다면 토실이 전사는 거인일 터, 내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면 같은 전사지만 개미로 보일 것이 자명하다. 아직 지지대는 준비하지 않았다. 크는 대로 전사의 검을 준비할 것이다. 수련하는 데 조금이라도 빈틈이 없도록 주시하는 시선은 한눈을 팔 수 없다.


전사 한 명을 잃고  꿈나무 전사 셋을 얻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발아해 좀 큰 새싹 다섯을 큰 물로 옮겨주고 나서  그중 조금 작지만 어깨가 유난히 벌어진 토실  전사가 무거운 날개가 축 쳐지는가 싶더니 시들시들해졌다. 다리를 꼿꼿이 세우기는커녕 가로 본능에 충실하더니 무위의 세계로 혼자서 돌아갔다. 그곳은 있어도 없는 곳이요 없어도 있는 곳이라 전사들은 천국이라 불렀다.

가로보다는 꿋꿋하게 세로에 충실한 나머지 네 전사와 세 아기 토실이가 부실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 성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정성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로되 실한 열매로 돌아와 아이의 손에 꽉 차기를. 초롱초롱한 봄비를

맞으며 봄의 눈망울에 불꽃을 피우기를. 토마토들아, 여름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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