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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May 20. 2024

정원에서  무슨 일이

빗속에 들려오는 울음


가정의 달인 5월이다. 어린이날, 아이 생일, 어버이날, 부처님 오신 날, 아빠 생신, 스승의 날로 꽉 찬, 유야무야로 얼버무리면 뒤끝이 켕기는 그런 날들이 하트가 짱짱하다.

무구한 어린이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은 그치겠지, 내일은 그칠 거라고 희망 고문하다가 연휴가 지나갔다. 마음속에 그려둔 연휴 일정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야외 일정은 비와 우산과 공유할 수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효자가 되는 법이다. 유채꽃이 한창이라는 야외를 갈 수 없다면 잇몸으로 만개하면 된다. 야외보다는 축소되어도 나름 아름답고 실속 있는 정원이란 잇몸이 있다. 도시의 복잡다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의 전원주택에 모여들었다. 마치 꿀을 찾아 모여든 꽃 속에 꿀벌처럼. 유선은 오래전에 메말랐지만 깊어진 눈빛과 저 지하를 뚫는 사랑을 가슴에서 키우는 모정의 밭에 모유를 먹고 자란 성인들은 빠짐없이 날아들었다.


할머니가 가꾼 정원엔 길냥이도 머물다 간다. 짐승인 그들도 안다. 마냥 앉아 있다고 흙이 타샤의 정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손톱 사이로 흙이 들어가고 손톱 주위에 거스러미가 생기고 손바닥이 거칠어져야만 흙은 비로소 정원으로 거듭난다. 게으른 손은 보드랍지만, 흙을 가꾸고 지키는 손은 거칠어도 성스럽다고 할 것이다. 내 손보다 꽃이 먼저 내 손보다 나무가 먼저 내 발가락보다 잔디가 먼저인 할머니의 주름은 늘었지만, 정원은 점점 미색에 물이 오른다.


봄부터 눈 소식이 올 때까지 할머니 정원엔 꽃소식이 풍성하다. 바다 건너 타샤가 있다면 dd엔 할머니가 계시다.

조부모님을 위해 고사리손으로 준비한 편지와 연습한 피아노곡과 방송 댄스를 보여주는 재롱둥이들을 한참 바라보며 흥겨웠다. 오늘만 같아라 말은 없어도 깊은 눈망울에서 느껴진다. 한적한 시골집에 이토록 복작복작하는 이 계절이 얼마나 아름다울쏘냐.


먹고사는 게 뭐라고 도시에 모여들까. 시골은 점점 조용해지고 그 많았던 이웃들은 자연 도태되어 한 사람이 아쉬운 실정이란다. 자고 나면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어르신들, 작년까지 짱짱했던 건넛집 어르신이 보이질 않는다. 요양병원으로 갔다는 소식이다. 밤새 안녕이라는 평균 연세는 84세란다.


여흥의 시간이 흐르고 잠시 소강상태였다. 상큼한 과일이 당긴다는 아이 표현에 따라 과일을 챙기던 순간이다. 어디선가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귀가 유난히 밝은 아이가 토끼처럼 창가에 귀를 쫑긋 댄다. 그 아이를 따라 가만히 귀 기울이는 어린 천사들에 어른까지 합세했다.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고통스럽다. 숨이 끊어질 듯하다. 쥐어짜는 듯한 소리 같기도 하다.


정원지기인 할머니가 튀어 나가신다. 평소 아침에 정원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서 챙겨주는 양식을 먹고 가던 토리(할머니가 지은 도리, 토리 줄무늬 길냥이)가 출산하려는 모양이다. 이 빗속에 비를 피해 정원 어딘가에서 출산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네 마리 새끼를 낳은 듯한데 한 마리가 보인다. 어머나, 이렇게 작을 수가!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니 졸았나 길냥이 토리가 도망갔다. 어린 새끼 한 마리만 남았다. 할머니가 손자가 먹었던 약병에 우유를 넣어 아기처럼 입에 대 주었다. 어린 새끼 고양이는 쭉쭉 빨기 시작한다. 이 빗속에 그냥 두었다가는 이 새끼 고양이는 어떻게 될까. 마침 우동 상자가 보인다. 새끼의 이름은 우동이다. 세 줄무늬와 이름이 찰떡이다. 아가, 이제 너의 이름은 우동이다.


비는 멈출 줄 모르고 추적추적 내린다. 고양이가 천을 깔아준 박스지만 추운 듯하다. 체온 유지가 될까. 비만 안 오면 바깥도 따뜻해서 문제가 없을 테지만 밖은 지금 비로 인해 어른도 춥게 느껴지는 마당이다. 할머니는 박스를 들고 집안으로 들고 들어오신다. 할머니 만세!


아, 슬프다! 하늘이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나. 아니다 하늘이 아니라 모성이 실종된 어미인 토리가 무심한 거다. 토리는 다음 날 아침 정원에 나타났다. 우동이를 챙기러 온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길냥이는 모성이 없나. 케바케인가. 제 밥은 먹을 줄 알면서 우동은 관심도 없다. 그런 토리가 야속했던 걸까. 우동의 체온이 떨어졌다. 차갑다. 할머니는 우동이의 체온을 올리기 위해 살살 문지르고 따뜻하게 해 주었다.


아, 우동아! 밤에 역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서사가 막을 내리기도 하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우동이를 보러 몰려든 천사들은 사라진 우동이를 열심히 불러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우동의 모습은커녕 소리 하나 잡을 수 없었다. 천사들은 부모를 따라 제 둥지를 향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사실, 할머니는 밤새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다. 우동이를 지키느라. 그러나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우동이는 어미의 사랑 한 줌 받지 못한 것이 서러웠는지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할머니는 천사들이 볼까 무서워 우동이를 여명을 등진 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우동아, 그곳에선 좋은 엄마 아빠 만나서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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