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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Sep 27. 2022

선생님이라는 존재



2015년 겨울의 끝 무렵, 나는 기간제 교사로 1년 더 일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엔 중학교 3학년 여자반의 담임을 맡게 되었고, 순회수업은 없었다.


‘내가 담임선생님이라니….’


재작년, 중학교 2학년 남자반 담임을 했던 3개월 경력이 전부. 친해졌다 싶을 때 헤어지게 되어 아쉬웠고, 담임이었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는데 이번엔 1년 동안의 온전한 담임이다. 적어도 어리숙했던 처음보다 잘 해내고 싶었다. 잠깐이 아닌, 1년이지 않은가. 게다가 고입을 앞둔 여자아이들 반, 책임감과 더불어 잘 이끌어줘야겠다는 사명감도 함께했다.

 

담임이면 일찍 출근할 일도 많고 늦게 갈 일도 있을 테니 경차지만 내 차를 처음 뽑았다. 물론 3년 할부로. 차가 생기다니, 감격스러웠다. 이제 더 이상 뚜벅이가 아니다.

그동안 학교에 출근할 때에는 특수반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타고 다녀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었는데, 이제는 마음의 짐도, 시간에 대한 강박도 벗어난 1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지각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8시 전에 학교에 도착해 조례 전 여유 있게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맞아줄 생각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1년 동안 잘 부탁합니다.”


어색함과 긴장감이 감도는 교실 안. 서른네 쌍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숨죽이고 있다.


‘떨리지 않는 척해야지, 침착하자.’ 다짐하며 들어선 교실이었는데, 아이들을 보는 순간 미소가 떠나질 않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1년 동안 이 아이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게 되다니,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고,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도 한 뼘 더 성장하게 될 거다.


첫 소개를 하며 우리 반의 방향성과 나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를 했다.

함께 의사결정을 하며, 따돌림이 없는, 마음이 편안 학교생활이 되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학급이 되길 바랐다. 친해지고자 먼저 이야기한 나의 인생 이야기를 더 좋아했던 것 같지만, 올해는 모든 일이 두려움 없는 설렘일 것 같다.


절반 이상 초과근무를 했던 3월. 어색한 첫인사와 달리 아이들과는 금방 친해졌지만, 역시 담임 업무는 녹록지 않다.

한 시간 수업을 하고 오면, 업무 메신저가 스무 통씩 쌓여있었고, 점심시간에도 외출증을 끊으러 오는 아이들, 식사지도 등 쉴 틈이 없이 흘러갔다.


“안녕하세요? 하은이 담임교사입니다. “


누가 시킨 건 아니었지만 며칠에 걸쳐 부모님들에게 전화로 인사도 드리고, 아이들과도 개인면담을 했다. 겨우 아이들 얼굴과 이름이 맞춰질 때쯤, 3월이 지나고 있었다.

사람 얼굴을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인데,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다.


이 와중에 나를 더 바쁘게 한 건 작년과는 다른 중국어 교과서였다. 내용도 달라졌기에 매번 다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이미 있는 자료도 충분했지만, 준비된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신 내기의 욕심이었달까.

그 덕분에 PPT 제작 실력이 나날이 늘어갔다.


꽃보다 예쁜 아이들과 함께한 스물다섯의 추억들.

알록달록 조를 이루어 요리경연대회를 하기도 하고, 목청껏 응원하며 체육대회를 즐기기도 하며,

서로를 위한 이벤트도 함께했다. 연극을 보러 가는 일도, 교내 축제를 즐기는 일도, 시험기간을 보내는 일도 익숙해졌을 무렵. 아이들과의 추억은 이미 내 스물다섯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일도 많았다.

많이 주고 싶어서 더 노력하다 보면, 그 모습이 되려 다른 교사들의 미움을 사는 일도 있었고, 사람들이 얽힌 모든 일이 그러하듯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또한,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공평하게 눈길을 준다고 하지만,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며, 넘쳐서 부담스러운 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게 아직 너무 많았다.

한 번은 한 아이가 나에게 편지를 써주었는데, 그 내용에 깜짝 놀랐었다.


‘선생님이 혼자 너무 많은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저희에게도 일을 나누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디서 들어봤던 말,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 담당이셨던 교생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주신 편지에 쓰여 있던 말이었다.


‘너무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10년 전 학급 반장일 때도, 담임교사가 된 지금 어른이 되어서도,  많이 변한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하는 그 마음은 그대로였나 보다.

그 모습이 타인이 보기에는 혼자서 너무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는, 벅차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힘들다고 생각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담임이 되고 나니 조금 후회가 되었다.



‘아이들에게도 경험의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또 다른 담임의 역할이 있다면 여러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 너무 내가 다 해주려고 한 것은 아닌지, 매번 말하기가 번거롭고 불편해서, 시간이 될 때 내가 다 하는 게 더 빠를 것이라는 오만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외면한 건 아닌지 하는 맘에 아이의 편지를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나는 꼭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지’ 다짐했건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졸업을 하고도 이따금씩 연락이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선생님 덕분에 교사를 꿈꾸게 되었고, 교육과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중국어가 너무 좋아져서, 중국어과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때는 너무 철없게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보고 싶어요. 존경합니다 선생님.”


이따금씩 오는 문자는 그래도 내가 헛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

.


“혹시... 중국어 선생님 아니세요?”


얼마 전 카페에서 전 직장 후배와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나려는데, 옆자리 아가씨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화장을 하고 꾸민 모습이 낯설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모습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게다가 아직도 나를 기억해주다니.. 새삼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존재감에, 마음 한구석 깊이 내려앉았던 옛 추억이 다시 몽글몽글 떠올랐다.


교권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을 더 무서워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속에는 사명감을 다해 일하는 멋진 선생님들이 존재하며, 그 멋짐을 본받아 더 예쁘게 성장해주는 아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밤낮없이 고시공부를 하고,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교사가 되었지만, 꿈꾸던 모습과는 새삼 다른 현실에 실망해서 교단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고, 안정적으로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임에 교사로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결과는 다를지언정 그들의 처음 마음은 모두 비슷했을 거다.


‘한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람된 일’



종종, 그 끝이 좋은 결과였건, 좋지 못한 결과였던 상관없이, 우린 그 과정만을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걸까, 학교라는 작은 사회, 그 속의 갑갑한 과정 속에 진실로 함께했던 선생님과의 추억은 유독 더 오래 간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내 생에 가장 빛나던 그 순간들이 그리운 걸 보면,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좋은 선생님, 좋은 어른, 좋은 언니가 되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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