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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Oct 03. 2022

학교 가는 길


 

조치원에서 한참을 꼬불꼬불 들어가야 나오는, 마을의 가장 작은 단위인 ‘리’였던 나의 고향.

그곳은 나의 유년시절 세상의 전부였다.


기찻길 아래로 나 있는 길을 지나면 기다란 성벽 같은 높다란 길이 이어진다. 그 길은, 기찻길과 함께 작은 마을을 빙 둘러 감싸고 있다.

높다란 길의 반대편에는 넓은 평야와 갈대밭이 있고, 그 뒤로는 강이 흐르며, 또, 그 뒤로는 아주 큰 산이 자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배산임수 지역이다.

한적하고 조용하다는 건 그만큼 생활인프라가 없다는 뜻, 이렇게 변변한 가게 하나 없던 작은 마을에서 11년을 자랐다. 그런데 이 시간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으.. 학교 가기 싫어…….’



지금도 그렇지만 난 아침잠이 유독 많다. 그리고 잠을 이겨 내기엔 학교가 나에게 그리 재밌는 곳은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걸 들키면 안 되는데….’


꼬맹이가 알면 뭘 얼마나 알겠는가, 그래도 그 얕은 지식마저 탄로 날까 봐 매일이 걱정 투성이었다.

날마다 가는 학교지만, 날마다 힘이 들었다. 그런 나를 깨운 건 팔 할은 언니 덕분이다. 한 학년 위 선배라고 알뜰살뜰 나를 챙겼던 언니. 지금 생각하니 참 귀엽고 고맙다.

아침 7시 30분이 채 되기 도전에 집을 나서야 한다. 읍내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가려면 꼬꼬마 걸음으로 아마 두 시간은 걸릴 거다. 그래서 학교버스가 시골 동네 여기저기를 빙 돌아 아이들을 태우는데, 우리 동네 안까지 진입하기에는 너무 큰 대형 버스라 마을 초입의 정류장까지 3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우리만 아는 정류장, 정류장에는 표지판이 없다. 갓길에 차들이 비켜가라고 반원 모양으로 움푹 파내어 만든 공간, 그곳은 기다림의 쉼터였다.

동네 언니 오빠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 합쳐야 10명이 될까 말까, 여럿이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은, 길고 힘들지만 즐거운 여정이다.


비 오는 날은 까만 비닐봉지로 신발을 감싸 묶고 큰 웅덩이들을 찰방찰방 뛰어넘으며, 비가 그치면 작은 청개구리를 잡아 벗 삼으며, 맑은 날에는 가는 길 꺾은 노랗고 하얀 개망초 잎들을 한 곳에 차곡차곡 모아 소꿉놀이하며 그렇게 매 순간 자연과 함께 했다. 내가 가장 이상적인 시골소녀의 이미지를 풍기었던 시간들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뭘까?’

혼자만의 물음에 스스로 답을 정한 것도 그쯤이다.


‘초록색. 초록색이 제일 좋아, 그다음은 하늘색!’


진짜 좋은 거라기 보단 그냥 자주 보는 색깔이라 정이 갔던 게 아닐까, 하늘과 풀들, 그리고 논의 전경. 이유가 어찌 됐던, 지금도 나는 여전히 초록색이 좋다. 초록의 싱그러움과 평안이 주는 그 안정감. 자연과 함께하느라 늘 피부는 까맣게 타버렸지만, 피부를 포기할 수 있을 만큼 하늘과 바람과 초록이 좋다.


사실 자연 탓을 하기엔, 내 피부는 원래 까만 편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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