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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슝이모 May 05. 2022

잘 됐다! vs 아니, 왜?

떠남을 준비하는 자세

1. 

“나 이번에는 태국으로 가.”

내 깜짝 발언에 주변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잘 됐다!” vs “아니, 왜?”

‘잘 됐다’ 반응의 부류는 내가 늘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짐작하며, 그들 또한 해외 생활을 해봤거나 동경하는 싱글족 친구들이다. 그들은 ‘언젠가 태국에서 살고 싶어’라는 내 장래희망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런 까닭에 내 행보에 진심 담은 축하를 보냈다.  

다만, 나를 잘 아는 한 친구는 내가 새 직업에 너무 빨리 싫어증(‘싫어, 싫어’를 반복하며 현재 하는 일에서 탈출을 감행하려는 증세)을 느끼지 말기를 당부했다. 노후를 고려해야 할 중년인 만큼 새로운 일에 잘 적응 후 장기전으로 돌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수차례 강조한다. 고마운 친구!

 

“아니, 왜?” 반응의 부류는 예상했던 대로 부모님과 동생들을 포함해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들이다. 내가 코시국 동안 한국에 묶여 있던 것을 그간의 방랑(그들은 여전히 방황이라 생각한다)을 청산한 채 한국에 안주한 것이라 지레 믿은 것이다. ‘아니 왜’ 부류는 내가 더 이상 해외에서 고생(이 아니라고 해도 믿지를 않는다) 하지 말고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두 부류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내 편에서 생각해주고 있다는 따스한 사려가 있다. 이 모든 반응이 나는 마냥 고맙고 미안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나를 향한 모든 반응들을 살뜰히 품어 안고 어디에서건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정말로 그러하렵니다!            


2. 

파견을 주관하는 기관에서는 태국으로 떠나는 교원들이 현지 교사와 학생들에게 당당하게 다가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국어 수업을 받도록 해주었다. 파견 전 한 달간 하루에 두 시간씩 진행하는 온라인 수업이다. 

나의 경우는, 캄보디아에서 8년을 살았던 덕(? 탓?)에 내 ‘외국어’를 관장하는 뇌 영역에는 캄보디아어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태국어도 쉽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기본 장착된 동남아 언어로 인해 태국어를 습득하는데 굉장한 언어의 간섭현상이 일어나는 중이다. 두 언어가 어디인가 많이 닮아 있어서 그런 듯하다. 두 언어 모두 인도의 고어인 산스크리트에서 파생되었고 태국어가 캄보디아어인 크메르어에서 와서 변형되고 다듬어진 언어라서 더욱 그렇다. 차라리 동남아 언어 백지상태에서 시작했다면 수월했으려나.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만들 때 맨처음 ‘디찬’(태국어로 ‘나’)이 나와야 하는데 그전에 ‘크뇸’(캄보디아어로 ‘나’)이 선수를 치고 입에서 튀어나온다. 숫자를 셀 때는 또 어떻고. ‘능 썽 쌈 씨(태국어로 하나 둘 셋넷)’보다 ‘모이 삐 바이 분(캄보디아어로 하나 둘 셋 넷)’이 고질적으로 먼저 나온다. 

응오압!(캄보디아어로 ‘죽겠네!’) 

게다가 단어는 어찌나 안 외워지는지. 열심히 외운 단어는 돌아서면 허무하게 증발한다. 학창 시절에 공부한 방식대로 공책에 여러 번 쓰고 중얼중얼 소리 내어 외워 봐도 다음 날 아침이면 깨끗한 뇌로 기상하는 이 슬픈 현실. 뇌의 노화를 제대로 체감 중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뇌혈관에 좋다는 오메가 3와 폴리코사놀을 급하게 구입했다.                                             

태국어를 공부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학생의 심정을 이해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새로운 언어 앞에서 좌절을 경험하니 학생에 대한 이해심이 충만해졌으니까.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힘들다며 뒤처지는 태국 학생들을 재촉하지 말고 충분히 기다려줘야지. 그럼 그럼.      


3.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태국으로 파견될 교원들이 며칠간 합숙하며 사전연수에 참여했다는데 이제는 온라인으로 사전연수를 받는다. 연수 내용 구성은 크게 네 가지로, 대조언어학, 한국어 평가론 등의 교수법 관련 강의, 태국 문화와 시험 체계 등 태국 관련 강의, 파견 교원 복무 및 안전 교육, 그리고 기파견 교원과의 간담회가 4일간 진행되었다.   

하루 5시간을 내리 온라인으로 사전연수를 받는데 한자리에 앉아서 컴퓨터 스크린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오매~ 징하게 힘들다. 집중이 왜이리 힘든 지.  단 4일 받는 온라인 연수도 이리 힘든데 전 세계 학생들이 코시국 동안 이렇게 힘들게 비대면 수업을 받았던 거야? 진심으로 학생들에게 경의와 존경을 표한다. 장하다, 학생들!


내가 근무할 파견 장소 발표는 사전연수 마지막 순서다. 미리 알려주면 교원들의 흥분과 설렘으로 연수 진행이 어려울 것을 감안한 적절한 조율이겠다만. 사전연수 받는 나흘 내내 파견될 학교와 장소가 궁금해 죽겠던지. 상상의 나래를 펴며 발표 순서까지 분과 초를 세며 기다렸다. 

나는 어떤 곳으로 가게 될까. 방콕과 같은 큰 도시? 아니, 대도시는 피하고 싶다. 캄보디아나 라오스에서 활동할 때 늘 시골 마을 작은 학교들을 다니며 활동했던 경험이 깊이 박혀있어서 그런가. 소도시의 소규모 학교였으면 좋겠다. 학생 이름을 다 외울 수 있는 그런 학교면 딱일텐데. 이병헌과 전도연이 출연했던 영화 '마음풍금' 나오는 그런 학교 말이다. 

이왕이면 북쪽에 위치한 도시면 좋겠다. 남쪽 지역보다는 덜 더울 테니까. 동남아 생활 10년 이상 했어도 더위는 영 적응이 안 된다.

사는 곳에 바다나 강, 아니면 냇물이라도 물이 있으면 좋겠다. 태생이 물고기자리라서 그런가. 물을 봐야 마음에 안정이 된다. 희망사항이 너무 많나? 지원 당시만 해도 태국이면 어디든 다 좋다던 마음이 간사하게 이리 바뀐다. 


대망의 파견지 발표 시간! 두구두구두구...

지역과 함께 파견 교원 이름이 발표되었다. 

차층사오(Chacheongsao)

으응? 처음 듣는 지명이다. 재빨리 구글 지도를 검색하니 방콕 도심에서부터 동쪽으로 70여 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다. 태국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에게 연락해서 물으니 생소한 이름이란다. 적어도 관광지는 아니라는 소리겠지. 그 점은 마음에 든다. 

구글 지도 속 학교 사진을 보고 잠시 당황을 했다. 널찍한 운동장에 커다란 건물이 겹겹이 보이는 제법 큰 규모의 학교다. 소박한 시골 학교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나의 꿈이여, 안녕...

지도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학교 주변으로 보이는 강과 호수였다. 물이 있다. 그거면 됐어. 이것으로 나는 이미 내 태국 생활에 만족할 것이라는 긍정 모드로 바뀌었다.

새로운 삶이 멀지 않은 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참 기분 좋은 떨림이다.          


내가 살 곳의 맛집, 카페, 마트 등을 별표, 깃발, 하트 등으로 미리미리 찜해두는 건 출국하는 이의 기본자세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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