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의심을 선사하는 <데미안>
요즘 시대에 거짓 뉴스를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 뉴스에 유출되어서 산다. 뉴스를 온전히 믿어서는 안 되는 곳. 21세기 사회이다. 19세기 유럽은 기독교에 미쳐있었다. 성서가 진실이라고 신실한 마음으로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성경은 과연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데미안에 그 답이 나와있다.
시작은 싱클레어와 신실한 가정의 평범함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인간은 제한된 영역에 관심을 가지는 법. 소위 말하는 ‘일진‘, ’조금 노는 애‘와 어울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그들과 어울리는 행적이 필요했고, 싱클레어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이 거듭되고, 그로 인해 자존감을 얻어가던 싱클레어는 식료품점에서 사과 보따리를 훔쳤다는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식료품점 사장은 도둑에게 현상금을 걸었고, 정작 사과를 훔치지도 않았던 싱클레어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도와주며 친해지게 된다. 데미안은 처음부터 기묘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성서 속의 카인’과 ‘실제의 카인’은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서 속의 카인’은 권위를 얻기 위해 형제를 살인한 잔악한 사람이었지만, 데미안이 생각하는 카인은 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형제라는 점을 이용하여 카인의 이야기에 ’형제를 죽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매달아 둔 것이라며 싱클레어의 선악을 흔들어 놓았다.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일일 것이다. 평생을 어른들이 옳다며 자신을 길들여 놓았으나, 새로운 방안이 그를 두 개의 갈림길 속에 두었을 것이다.
물론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사실이고, 강자이기에 표적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카인의 표적은 진실이고, 카인이 실제로 늠름하고 남달랐으며, 그의 후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오래된, 해묵은 이야기들은 늘 사실이야. 그러나 언제나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언제나 사실대로 설명되지도 않지.‘
나는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후략]‘ 구절보다 더욱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흔드는 말이다. 뼈를 찌르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믿던 것들이, 내가 보는 것들이 거짓일 수 있다고, 데미안은 힘껏 외치고 있다. ‘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알던 진실을 거짓이라며 외치는 그의 말에 ’알’의 존재를 더욱 선명히 느낀다.
그 뒤로 싱클레어는 데미안은 눈에 띄게 피해왔지만, 데미안은 그저 웃을 뿐, 싱클레어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 뒤에, 종교 수업을 함께 듣게 된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데미안이 첫 운을 떼었는데, 그 말이 “저기엔 무언가가 있어, 싱클레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가. 이 이야기를 한 번 따라 읽어 봐.”라는 말이었다. 그 뒤 이야기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도둑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나는 회개하고, 하나는 회개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무덤에서 고작 두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축제를 벌이며 회개를 운운한다는 말을 하며 그 시대의 신실함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던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고, 선악의 경계에서 진실을 알아내길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데미안의 말은 신선하게 들려왔고, 싱클레어는 혼란스러웠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한 번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데미안이 입술을 채 떼기도 전에 말했다.
“나도 이미 알아. 심각할 것 없어… [중략] 구약과 신탁의 신이 탁월한 분이기는 하지만, 그는 표상하는 신은 아니라는 점이야. 그는 선, 고귀함, 아름답고 드높은 것, 아버지다움, 감상적인 것이지. 옳아.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에게도 몰아지는 거야. [후략]…“
이 말은 싱클레어를 깊이 믿고 있고, 기다리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데미안은 누구에게나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 말을 이어가던 그가 감정이 격해질 정도로 말할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싱클레어 앞에서는 달랐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싱클레어는 방황했다. 술도 마시고, 학교에서 난동도 피우고, 퇴학 직전까지 몰렸던 그는 어떤 여성을 보았다. 그녀를 그는 ‘베아트리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그렸다. 그녀의 초상화는 어딘가 데미안을 닮아 있었다. 술도 방황도 멈추었다. 점점 근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사물함에는 어떤 쪽지가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에 대해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찾게 되었다. 하지만 말실수로 인해 친구를 잃고 말았다.
싱클레어는 정신없이 학교를 보내고 방학이 오자 데미안을 찾으려 들었다. 하지만 과거 데미안이 살던 집에는 어떤 노모가 살고 있었다. 그 노모가 데미안의 어머니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바로 싱클레어의 베아트리체였다. 하지만 노모는 데미안 일가의 현 거처까지는 몰랐다.
그렇게 떠돌던 어느 날,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났다.
이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를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카인의 후예‘ ‘표적’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데미안과 에바부인과 함께 아브락사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쟁터에 함께 나가게 된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포격에 맞고 야전병원에 누워 대화를 나누었다. 데미안은 자신이 필요할 때면 자기 안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을 남긴 채 그는 다음 날 아침 사라졌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었다.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다.’
결국 싱클레어는 데미안이었던 것일까? 데미안은 또 헤르만 헤세이고, 헤르만 헤세는 또 싱클레어인 것이다. 싱클레어는 방황하던 헤르만 헤세의 모습이고, 데미안은 그런 자신의 과거에게 말을 거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진실을 굳게 믿던 헤세의 내면에는 또 데미안이 있던 것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와 같던 헤르만 헤세의 내면을 바꾼 것이고.
작품 <데미안>은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이들의 마음속의 데미안을 자극하려고 출판한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