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죽음이 두렵지않은 청년

by 김사장 Dec 21. 2024

청년이 매장에 들어서면 맨 처음 눈길을 돌리는 곳은 카운터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지기가 무섭게 고개를 돌리지만 내심 반가워하는 속내가 눈가에 번진다.

청년이 쓰는 돈은 만원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1+1 콜라와 도시락, 아이스크림, 빵과 편육 2만 원이 넘는 물품을 바구니에 담아왔다.

"오늘은 과소비했네요!?"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맛있는 거라도 먹고 죽어야지 덜 억울하죠."

"그렇게 죽는다는 얘기 함부로 하지 말라닌깐~"

"그게 사실인데 어떡해요."

늘 공사현장 엘리베이터에서 20분 넘게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도 두렵지가 않더라고요,

아니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나!? 그래도 무사했으니 다행이네요."

"아뇨!?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아요. 아시잖아요? 제 형편."

"아직 젊으니깐 희망을 갖어요, 열심히 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 올 거예요."

"아뇨,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엔 저한테 희망이란 건 없어요. 그런데 아버지보다 내가 먼저 죽을 거 같아요."

"에고~따듯한 위로에 말을 해주고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괜찮아요, 전 공사현장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뛰어내릴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해요."

"제발 그런 생각하지 말아요."

청년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버렸다.

죽음을 매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얘기만을 듣는 다면 천하에 패륜아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속내를 안다면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

30대 중반인 청년은

아버지에 알코올중독으로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으며 아빠와 남동생 셋이 함께 살았으나 고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맘대로 취직도 할 수 없었고 동생은 일찍 감치 집을 나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간간히 전화만 주고받으며 엄만 아예 연락조차도 되지 않아 10년 넘게 막노동을 하며 아버지에 간병비를 대고 있으나 그마저도 일이 없는 겨울철엔 간병비가 누적되어 자기 앞으로 빚만 몇천이라며 조만간 파산 신청을 해 볼 생각이라고 했었는데 마침 오늘 엘리베이터에 갇히면서 순간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은 2~3년 동안 청년과 나눈 대화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죽음을 담담하게 말하는 청년 눈에는 삶에 미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남아있지 않아 보여

더욱 가슴 아팠다.

매번 파이팅 하라는 말과 좋은 생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라고 했지만 그런 말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는 게 확인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대화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자기 말을 잘 들어줘서

매번 고맙다고 했었지만

나 역시도 처음엔 호기심이 생겨 잘 들어줬지만 어느 순간 반복되는 신세 한탄이 뻔한 탄식처럼 느껴져서 나중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하지만 오늘 그에 충격적인 말에 다음부턴 좀 더 세심하게 들어줘야겠다는 생각과 마땅한 위로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일주일에 두세 번 오던 청년이 오지 않는 날은 청년에 안부가 너무나 궁금하다.





이전 18화 소중한 걸 놓치고 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