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뜸했던 그녀에게서 또다시 연락이 왔다.
"어~?"
"언니 매장이지?"
"응"
"몇 시에 마쳐?"
"나야 마치는 시간은 뻔하지, 근데 왜?"
"그럼 나랑 술 한잔 할래?"
"술도 못 마시는 거 알면서 무슨 술이야? 왜 무슨 일 있어?? 전화로 말하기 곤란해?"
"쫌 그래."
"그럼 우리 집 근처 커피숍으로 시간 맞춰서 오던가?"
"커피는 안 땡기는데, 생맥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알았어 그럼, 어디서 보자고?"
"둔촌동에 있는 호프집 알지? 거기서 보자."
"알았어, 8시 반까지 갈게."
"응, 이따 봐."
현모양처로만 알고 있던 그녀가 바람 피우는걸 내게 당당하게 통보한 이후로 마음 적으로나 몸 적으로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이 무 자르듯 싹둑 자르기가 쉽지가 않다.
물론 인간관계 득과 실을 따져 정리 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겐 어렵다.
호프집에 앉아 핸드폰만 만지작만지작하던 그녀는 내가 의자를 뺄 때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치킨은 살찔 거 같고, 골뱅이 무침 시킬까?"
"맘대로 해, 난 상관없어."
주문을 하고 잠깐에 침묵이 흘렀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네? 무슨 일 있어?"
"그래, 크게 별 일은 없는데, 근데 표정 안 좋아 보여?"
"응!"
"나 사실 석진이랑 헤어졌어!!"
"벌써?! 근데 왜?"
"그 녀석이 자꾸 적은 돈이지만 조금조금씩 빌려 달라고 하드라고"
"엥? 걔 돈 많아서 자기가 분양한 오피스텔도 분양받았던 거 아니야?"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분양받은 오피스텔은 진작에 해약했고 그 뒤로 몇십 만원씩 급하다며 빌려 달라고 해서 몇 번 빌려 줬는데 처음에는 바로바로 주더니, 그 뒤로는 액수도 점점 커지면서 바로바로 안주더라고~"
"어머? 참 별일이다. 빌려 준 돈은 다 받은 거지?"
"아니 마지막에 빌려준 50만 원은 조만간 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못 받았어, 하지만 끝까지 받아야지."
"그래!! 근데 이상한 놈이네, 큰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그런 돈이 없어서 자기한테 빌리는 것도 웃기고 한두 번도 아니었다느 것도 어이없네."
"그러닌깐~그래서 나도 사업하는 사람이 그만한 돈이 없어서 나한테 빌리냐고 했더니, 계속 말다툼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그냥 끝내자고 했어."
"잘했네, 근데 순순히 그러자고 해?"
"걔는 안된다고 하지, 하지만 더 이상 남자로 안보이기도 하고 지질해 보여서 못 만나겠더라고."
사랑을 빌미로 그녀에게 피해를 줄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론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에 내로남불은 8개월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남자에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 어때 보여?"
"이 사람은 누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