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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늘 Apr 20. 2024

내 돈 내산 내 집

독립은 내 집 마련부터

 집에서 나의 내면을 돌보고 있다. 내 집은 원가족과 결혼 가족 정도만 안다. 내 집에 온사람도 원가족과 결혼 가족뿐이다. 이곳에서 나의 이웃은 어르신 부부이다. 우리 부모님 연배 셔서 알고 지내신다. 부모님께서 내 집에 오셨다가 어르신 부부댁에서 차를 마시기도 하신다. 하지만 나는 어르신 부부에게 내 집에서 차를 대접하지는 않는다.





 나름 도시 속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격이다. 나를 귀찮게 하는 모든 일들로부터 벗어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약간의 루틴이라는 것도 생겼다. 매일 경제공부하고 투자하기, 책 읽기, 책리뷰하기(블로그 활동), 산책하기, 도서관 가서 신문보기, 부모님 댁 가기, 요일별 프로그램 시청하기 등이다. 부모님 댁 하고는 도보로 7분 거리이다. 직장 생활에 매여있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내 사업을 펼치고 싶지도 않다. 모두 다 힘이 들어가는 일이며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 나는 그런 깜냥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숨 쉬듯 고요하게 살고 싶다. 조기 은퇴자의 생활이다. 물론 경제활동은 필수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통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긍정확언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달 카드값 등은 빠져나가지만 투자 수익으로 다시 채워지고 있다. 당장 써야 할 돈은 토스 하루 이자 받기를 한다. 세전 연 2퍼센트 이율이다.








 내 집은 창 밖 풍경이 끝내주고 여러 장점이 있지만,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요인도 분명 있다. 이 집의 매도자는 양심적인 소액 투자자이다. 나도 한 수 배웠다.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의 수익을 보면 정리하기에 몇 채씩의 집을 가지고 돈놀이를 하는 분은 아니다. 내 집도 수익이 나왔기에 정리를 하시는 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사고파는 집들에 관심이 많을 때여서 내가 내 집에 대해서 나름 분석을 해봤다. 초기 분양받은 사람이 주변 인프라로 수익이 났고, 세입자에게 이사비용 등을 물어주고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판 것이다. 사겠다는 사람은 나였다.




 나는 결혼 전에 집을 떠날 일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사 남매 모두 마찬가지이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을 때 결혼을 했고 제법 멀리 떠나게 되었다. 그때는 내 가정이 생긴다는 기쁨이 컸기에 다른 상황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혼 초에 집을 살 돈은 되지 않았고, 차차 모으면서 내 집 마련 준비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부모님과 형제 모두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경험이 있어서 나도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아파트 분양가는 구축에 비하면 높은 편이었지만 당첨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다 공급 과잉과 부동산 정책이 맞물리면서 미분양 사태도 생겼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르자 결국에는 분양가보다 1.5배, 2배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의 폭등장세는 (코로나 팬데믹, 제로 금리 등의) 예외적인 상황 같기도 하다. 부모님과 형제는 은행빚 없이 입주를 했는데 지난 몇 년간의 폭등 장세에서는 빚 없이는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근로자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월급뿐인데 그것에 의지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당연하게 빚을 내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 집도 차도 온통 할부 인생이다. 물론 그럴 여력이 된다는 것도 능력이긴 하다. 하지만 월급이 끊기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상황은 재난 수준의 사고라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기에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인가?

 나는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여서 은퇴 생활자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자녀에게 주택청약 통장과 천만 원가량이 든 통장도 주었다.








 20대에 집을 떠나서 대학생활을 한 사람들에 비하면 나에게 그런 환경은 이제야 만들어진 셈이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학교 공부를 하면 되는 20대의 상황과는 많은 것이 다르긴 하지만, 스스로 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가부장제인 시집 문화와 돌봄의 늪에 빠져서 병든 정신력으로 바닥을 찍고서는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결국 죽을힘으로 살고자 했다. 나는 어느새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였기에 대책이 필요했다. 최진영 작가님의《홈 스위트 홈》에서 화자가 하는 말이 나와 같은 심정이어서 깜짝 놀랐다. "나는 병원 침대에서 죽고 싶지 않아. 집에서 죽고 싶어." 마치 내가 하는 말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나도 사는 동안 덜 아프게 내 집에서 살다가 떠나고 싶다. 그래서 독립은 내 집 마련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독립은 원가족과 결혼 가족의 집을 거쳐서 단독 명의 첫 집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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