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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Apr 13. 2024

범인을 찾아라

범인을 찾아라


교사생활을 하면서 정말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무장해제 되었던 순간도 많고, 깔깔 웃었던 순간도 많은데 눈물 날 정도로 웃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우리 반에는 말도 잘하고, 뮤지컬 같은 톤으로 말하는 아린이라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아린이는 모든 친구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는 귀여운 꼬마아이 었다.


아린이가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 두 명에게 다가가 "나도 블록놀이 같이하자."라며 멋진 성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아린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게 다가왔다.


 "턴댕님. 친구들이 나하테 냄새난대요."


어찌나 서러운지 말 잘하는 아린이가 우느라 발음도 제대로 못하며, 친구들이 자기에게 냄새가 난다고 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던 차라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어떤 냄새가 나는데?"

 "음. 안 좋은 냄새요. 똥냄새인가?"

 "맞아. 근데 아빠냄새 같기도 해."


응? 아빠냄새?..

아무튼 난 아린이의 냄새가 아님을 해명해 주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런데 또 아이들이 아린이가 옆에 올 때마다 슬금슬금 엉덩이를 피하는 모습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얘들아, 왜 자꾸 아린이를 피해?"

 "진짜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맞아! 근데 이건 쫌 진짜예요!"


쫌 진짜는 뭘까.. 아무튼 아이들의 진짜로 냄새난다는 말을 듣고 혹시 바지에 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서 아린이의 귓속에 살짝 "아린아 선생님한테 와볼래?" 했더니 눈치 빠른 우리 아린이는 나의 배려를 꿀꺽 삼켜버리고 


"아~~ 나 쉬했나 보려고요? 근데 친구들한테 몸 보여주면 안 되니까! 저 근데 쉬 안 했는데!! 그럼 한 번 봐봐요!!"

하고 큰소리치며 나에게 왔다.


"그.. 그래."


나는 아린이의 당당함을 뒤로하고 살짝 속옷을 확인해 보았는데 아린이가 말한 대로 뽀송한 상태였고, 의문에 싸인 나는 아린이의 몸에 대고 여기저기 냄새를 킁킁 맡기 시작했다. 


그때 같이 블록놀이를 하던 친구가 내 귀에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 아린이 발.."하고 슝 뒤돌아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라..? 그럼 네가 말한 아빠냄새는..(이하 생략.)


나는 아린이에게 "저기.. 아린아 실내화 좀 벗어볼래?"하고 물었더니 도리도리 하면서 오히려 크게 우는 아린이다.


 "저 진짜 발에서도 냄새 안 나요!"

고개까지 도리도리 저어가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 반, 귀여워서 놀리고 싶은 마음 반이 생겨버렸다.


 "그럼 확인해 보면 되잖아~ 아까 아린이가 쉬 안 했다고 선생님 확인하게 해 준 것처럼! 그럼 친구들도 아린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잖아."

 "아~! 참~! 그렇겠네~~"

하며 눈물을 쏙 뒤로하고 주섬주섬 실내화를 벗더니 자기 실내화 냄새를 맡아보는 아린이다.


그런데 아린이의 표정이 아주 구겨지더니 "윽!! 쓰레기냄새!!" 하는 것이 아닌가. 엄청난 반전이었다.


 “선샘님!! 이거 내 실내화 아닌데, 이거 실내화가 좀 썩은 거 같아요! 이거 내 거 아닌데."라며 자꾸 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거 아린이가 신고 있었잖아. 여기 뒤에 이름도 아린이라고 쓰여있는데.. 흐음.. 그럼 누구 거지?"

 "이거 지독하다. 이거 내 거 아닌데."

 "어라? 그런데 왜 아린이 이름이 쓰여있지..?"

 "몰라요. 근데 정말 내 실내화는 이런 냄새 안 나요. 나 이거 엄마한테 새 걸로 사달라고 해야겠다."

하며 스스로 실내화를 벗어서 자기 가방에 넣고는 아차 싶었는지 다시 실내화를 꺼낸다.


 "앗, 지독한 냄새가 내 가방에 들어있으면 엄마가 깜짝 놀라시겠다."

하며 실내화를 빼는 효녀의 모습이 어찌나 귀여우면서 웃음이 나던지 나는 깔깔 웃어버렸다.


 "그럼 어디다 놓지? 여기 위에 놓으면 친구들이 냄새를 맡고 깜짝 놀랄 텐데.. 흐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아하~! 그럼 여기다 놔야겠다!" 

하며 실내화를 유치원 현관으로 갖다 놓는다. 


나는 흡사 혼자 하는 뮤지컬 한 편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뛰어가며 "친구들아 미안해~~ 나 이제 아무 냄새 안 나!" 하고 노래 부르듯 귀여운 자수를 하니 아린이 발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블록놀이에 끼워주는 아이들이다.


그렇게 아린이는 하루종일 맨 발로 지냈고, 하원할 때 어머님은 깔깔 웃으시며 눈물을 쏙 빼셨다.


그리고 다음날 귀여운 새 실내화를 가져와서 친구들에게 자랑도 실컷 한 뒤에 쾌적한 실내화를 신게 된 아린이다.


범인은 바로 나였음을 깨닫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꼬마 범인의 모습을 보며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잘못을 이렇게 바로 깨닫고 사과한 적이 있는지 생각하게끔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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