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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Apr 07. 2024

사랑해요 선샘미

사랑해요 선샘미



8년간 유치원 선생님으로 생활을 하며 귀엽고 마음 따뜻해지는 일화들이 정말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일화를 풀 때면 항상 들었던 소리는 "너 이 일화만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만 써도 책 나오겠다."였고, 난 정말이지 아까워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감정에 솔직해서 숨김없이 모든 걸 보여주는데, 등원하는 버스에서 문을 열자마자 손을 내밀며  "사랑해요 선샘미."하고 기다리며 뜯은 민들레 한 다발을 내밀고 고백을 하기도 하고(그럴 때면 정말이지 귀여움 백배에 도파민이 파워 분비 되어 심장이 뛴다.)


고백 한 번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끊임없이 종이에 그림을 그려주고, "선샘미. '사랑해요' 어떻게 써??"하며 내가 써준 글자 위에 고사리손으로 따라 쓰며 나에게 편지를 주기도 한다.


그렇게 교사생활을 하며 받은 편지는 약 구백구십구만(?) 개.


5년 차쯤의 어느 날은 갑자기 우리 반의 왕자님 준이가 교실을 빙글빙글 도는 것이 아닌가. (고집도 세고 편식도 어마무시하게 심한 준이는 외동으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왕자 같은 외모와 눈웃음으로 모든 것을 녹여버린 아이다.)  


밥 먹고 나자 교실 전체를 계속 빙글빙글 도는 행동을 반복해서 어질어질한 찰나였다.


 "준아, 안 힘드니?"

 "응."

 "그런데 왜 자꾸 도는 거야?"

(이 와중에도 준이는 돌고 있다.)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돌아버리겠어.(히죽)"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응?"


정말 많은 사랑표현과 고백을 받아왔지만 이런 신선한 표현은 처음이었다. 옆에 있던 부담임 선생님께서는 그래서 정말 글자 그대로 교실을 빙글빙글 돌았냐며 박장대소를 했다.


 "준아, 선생님이 너무 좋다니까 고마운데..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음, 아빠?"


아.. 아버님이 어머님께 격하게 사랑표현을 하시는구나. 그래도 글자 그대로 방안을 빙글빙글 도시진 않았을것 같은데... 그건 준이가 생각해낸걸까..? 난 준이가 귀여워서 웃음이 터진 채로 준이에게


  "그럼.. 준이는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어?"하고 물었다.


 "응.나 선생님이랑 결혼할래."

 "준아, 결혼을 약속할 때 반지를 주기도 해.

  준이도 선생님한테 색종이로 반지 접어주면 안 될까?"

(미술활동 싫어하는 준이를 이걸로 꼬셔보려고 했다.)


 "음.. 결혼은 좋은데, 반지 접는 건 싫어!"

 "아.. 그렇구나.. 알았어.  다음에 준이가 선생님 생각하면서 반지 접어와 주면 행복하겠다~"

 "음..생각해 볼게."

하더니 준이는 쿨하게 뒤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준이는 등원하자마자 내게 콩순이가 그려진 플라스틱의 하트반지를 내밀었다.


 "준아, 이거 혹시 결혼반지야?"

 "응! 빨리 껴봐."

 "준아, 혹시 어제 선생님이 한 말 기억한 거야?"


엄청난 감동이 밀려오는 찰나


 "이거 여기 밑에서 주웠어!"

 "아.. 주운반지야?"

 "응! 선생님이 청소할 때 내가 옆에서 주웠지~"


좋다 말았다.

주인 찾아줘야지 준아..


하지만 반지가 예뻐서 선생님한테 주고 싶었던 준이의 마음은 반짝반짝 나에게 고스란히 다가왔다.


그리고 또 다른 날 생활도구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도 있음을 이야기 나누며 주방용품으로 난타 공연을 하는 영상을 보여주고 있을 때였다.

준이가 물었다.


 "어!! 선생님 왜 저 여자는 옷이 없어요?"

 "아 저건 배꼽이 보이는 옷인데, 저런 모양의 옷도 있어."

 "소중한 우리 몸을 보호해야 하는데.. 저 사람은 유치원에서 안 가르쳐줬나 보다!"

 "그러게. 우리 몸을 보호해야 하는데."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은 우리 준이 모습에 웃음을 참다가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던 찰나, 준이의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야!! 우리 반 선생님보다 저 사람이 더 예쁘다!"하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5살 인생에 선생님이 제일가는 미녀인 줄 알았는데, 드디어 넓은 세상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나랑 결혼까지 한다던 준이가 저런 말을 하는데 서운한 건 사실이었다.


 "뭐..? 정말? 선생님보다 저 사람이 더 예뻐?"

 "응! 그래도 결혼은 선생님이랑 할 거지롱~"


미워할 수가 없는 준이.


그렇게 사랑도 많고 고집도 많던 우리 준이는 한 학기가 지날 무렵 존댓말도 잘하게 되었고, 편식이 너무 심해서 거의 흰 밥에 국물만 애원하듯 먹였지만 2학기가 끝날 때에는 반찬까지 싹싹 긁어먹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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