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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Apr 28. 2024

넌 어디서 왔니?

넌 어디서 왔니?



나는 8년이라는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교사생활을 하는 내내 다른 선생님들은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경험(?)들을 많이 했다고 자부한다.


이를테면 매 해마다 그해의 가장 힘든(?) 아이들은 항상 우리 반이었다. 우리 원의 한 천사가 하늘나라의 별이 된 아주 슬펐던 일도 있었고, 부모의 아동학대 정황을 기록하였다가 신고를 했던 경험도 있었으며, 그중 오늘 쓸 내용은 세계 각국의 다문화 천사들이 내게 왔던 내용이다.


다문화 가정은 요즘 흔하다. 그런데 보통 맡게 되는 다문화 가정의 국적은 흔히 가까운 중국이거나 일본 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아이들이다.


나는 중국 다문화가정의 유아, 베트남 다문화가정의 유아, 말레이시아 다문화가정의 유아는 물론이고 몽골에서 온 유아와 미국에서 지내던 유아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왔던 유아까지 정말 지구 한 바퀴 각 국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래서 몸소 세계인의 인사나 문화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그중 몽골에서 온 영웅이는 특히 부모님이 모두 몽골분이셔서 한국어가 꽤나 서툴렀다. 이제까지 만났던 다른 아이들은 부모 한 분은 다른 국적이었지만 나머지 한 분은 한국분이셔서 언어가 조금 느린 경우는 있었으나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영웅이는 달랐다.


말을 하지 못해 얼마나 답답했는가. 나도 답답하지만 이제 막 5살에서 갓 6살이 된 영웅이는 오죽했을까. 영웅이는 화가 날 때마다 바지에 소변을 누며 표현했다.


영웅이는 이름도 뭔가 귀여운 캐릭터 같은 느낌이었지만 생긴 것도 귀여운 캐릭터 같았다. 하얗고 동그란 조금 커다란 얼굴에 밝은 홍조가 항상 끼어있었다. 영웅이는 아직 "안녕하세요."도 잘 못하는 상황이었고 부모님은 그런 영웅이를 가정에서 데리고 있다가 앞으로 영웅이가 한국에서 살 날이 걱정되어 유치원에 보낸 것이었다.


나는 영웅이와 친해지는 것이 먼저였다. 인사를 서로 해야 하는데 영웅이는 항상 묵묵부답으로 입을 꾹 닫고 있어서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그날 밤 구글 번역기에 몽골인사를 검색해서 음성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열심히 연습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영웅이에게 "센베노."하고 웃어 보였다. 인사를 듣고 영웅이의 입꼬리가 웃을 듯 말 듯 씰룩거렸다.


 "에에~~? 선생님 지금 영웅이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 호기심에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나는 “영웅이는 이제까지 다른 나라 말을 더 잘해서 한국어를 안 하고 있었던 거야."라고 설명해 주니 "와아~ 영웅이 대단하다! 영웅아 다른 나라 말 해봐!!" 하며 더욱 몰려들었다.


영웅이가 미소 지으며 쑥스럽게 "센베노."하고 첫마디를 열었다. "센베노."그 인사가 영웅이가 원에 와서 처음 내뱉은 고국의 말이었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영웅이 또 아는 말은 뭐야?" 하니 "세흥헛떠래." 한다. 잘 먹겠습니다 라는 뜻이었는데 그 외에도 다른 단어들을 부끄러워하며 조금 이야기하자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더니 두 손을 모아서 "멋있다~~"한다.


"얘들아, 이제 영웅이한테 한국말도 많이 알려주자. 영웅이가 말을 이렇게 잘하는데 얼마나 답답했겠어." 하니 아이들도 "나는 영웅이가 진짜로 말을 못 하는 줄만 알았네~" 하며 말을 잘하는 편인 여자 친구들이 영웅이를 데리고 다니며 "이건 가위야.", "이건 책상이야.", "이건 의. 자." 하며 한국어학당이 열렸다.


한 학기가 지날 쯤엔 먹고 싶은 반찬이 있으면 "이거."라고 표현할 줄도 알게 되었고, 친구에게 "곰마워.", "미아내." 하며 서툰 한국 발음들로 한 마디씩 언어가 늘고 있을 때쯤이었다.


영웅이가 2개월 동안 몽골 본가로 돌아가서 지내다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아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친구들아. 나 놀다 올게."하고 떠난 영웅이를 아이들은 너무나도 기다렸다.

(물론 아직 말이 많이 서투른 영웅이는 저 문장을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웠다. 귓속말로 내가 한 번 말해주면 영웅이가 쭈뼛쭈뼛 따라 이야기하는 방식이었다.)


 “선생님~! 영웅이 언제 와요?", "영웅이 내일은 오나?" 하며 아직 날짜도 셀 줄 모르는 고사리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간다.


 "얘들아 영웅이가 보고 싶으면 우리 편지 쓸까?"

아직 글자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나씩 나에게 말해주면 내가 회색 글자를 뽑아서 아이들이 그 위에 글자를 따라 쓰는 방식으로 편지를 완성하였다. 또는 내가 글을 대신 써주고 옆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글과 그림이 모여 멋진 편지가 완성되었고 나는 영웅이의 부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아 주소를 여쭤봐 편지를 보내었다.


내 인생에서도 처음으로 몽골로 날려보는 편지였다. 쿵쾅쿵쾅. 아이들의 설렘만큼 내 심장도 터질 것 같았다.

솔직히 답장은 기대를 안 했는데,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고 함께 써 준 듯한 서툰 한국어로 "고마워." 한 마디가 적인 답장을 받고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뻤다. 거기에는 서툰 그림으로 그린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 두 개, 그리고 웃는 입이 그려진 사람도 그려져 있었다.


 "이건 누구지? 이건 선생님!?"

 "친구들아니야?"

 "선샘미. 진짜 몽골까지 편지가 갔어요??"

우리 반 이야기가 봇물이 터졌다. 이렇게 영웅이의 몽골 편지 답장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처럼 이야깃거리가 되어 영웅이가 한국에 오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영웅이가 다시 한국에 오는 날. 범상치 않았던 우리 영웅이는 한 손에 투명한 비닐 속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등원했다. 씩 웃으며 나에게 말없이 물고기를 건네는 영웅이.


 "영웅아, 이거 키우고 싶어서 가져온 거야? 선물이야?"

하니 말없이 끄덕끄덕하는 영웅이다.


덕분에 나는 물고기 집을 사고, 수조를 꾸미고, 아이들과 회의를 통해 '백호', '썬더'라는 이름을 붙인 물고기를 키우게 되었다. 얼마 못 가 아이들의 과도한 관심에 떠나버린 물고기지만 그를 통해 아이들은 이별도 배우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추억해 준 영웅이. 그리고 여러 나라의 천사들을 만나며 나는 원에서 담임을 하며 다문화담당 선생님이 되었다. 다문화교육과정을 짜서 교육청에 낼 기회가 생겼고 덕분에 교육청에서 표창장까지 받게 되었다. 내게 아이들이 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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