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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일간의 세계 일주 크루즈

by 윤재 Jan 26. 2025

33. 파나마 운하 통과



오늘은 아침 6시부터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날입니다.

미국의 최남단 키웨스트를 출항하여 이틀간 카리브해를 항해한 후 파나마에 도착했습니다.

아침부터 크루즈의 안내 방송이 바쁩니다.

부지런히 아침 식사를 마친 승객들이 14층 전망대로 올라갑니다.

양쪽 모두를 전망할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







파나마 운하는 82km 길이로, 파나마 지협을 통과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합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 서부지역으로 배를 이용해 가려면 남미의 끝을 돌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위험성,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운하를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좁은 파나마 지협과 니카라과 호수 두 후보지가 거론되었는데, 파나마는 약 80km 정도를 파서 물길을 만들면 양쪽을 연결할 수 있어 운하에 적절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1880년 공사 초기에는 프랑스가 운하 공사를 시작했으나 인부들이 사고 및 열대성 질병으로 2만 2천 명 이상 사망하고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미국이 이어받아 전염병 말라리아를 관리하면서 1914년 8월 15일에 완공시켰습니다. 운하의 소유권과 관리권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다가 1999년 운하 반환 협정을 맺고 운하의 운영권은 파나마에 반환하였습니다. 9년 간의 확장 공사를 마치고 2016년 6월 확장 개통되었습니다.  

         

파나마 운하 지역은 산악지대로 암반이 많고, 해수면보다 수위가 약 26m 높은 꼬르이예라 센 뜨랄 산맥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복합 감문 방식으로 건설되었습니다.

파나마 운하는 갑문식으로 만들어져서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무려 20,000km 이상을 돌아가서 최소한 몇 주 이상이 걸리는 긴 거리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되어 많은 선박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파나마 운하의 높이가 해수면보다 26m 높습니다. 선박들은 독에 들어온 뒤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독으로 올라가게 되고, 운하 중간에 위치한 가툰 호수를 거쳐 다시 독으로 들어가 물을 빼 내려가며 계단식으로 운하를 통과하여 바다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갑문 엘리베이터에 쓰이는 물은 가툰 호수에서 끌어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3 단계 갑문식 운하를 만든 이유는 운하 중간에 산맥이 있어 수에즈 운하처럼 평탄한 운하를 파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갑문 각 지역에 수위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통과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배가 운하를 지날 때는 예인선과 전동차들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운하를 모두 통과하는 데 8시간, 대기시간 등을 합치면 24~30시간 정도 걸립니다.     

우리가 탄 배도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경까지 12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크루즈 배가 운하를 통과할 때, 배와 수문 사이가 깻잎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했습니다.     





























파나마 운하 통과 물동량은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가 4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크루즈 측에서는 하루 종일 파나마 운하의 역사적 배경과 건설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방송으로 전해주었습니다. 많은 승객들이 운하의 양쪽 모두를 바라보기 위해 제일 높은 층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으면서 운하 양쪽의 울창한 정글의 모습, 파나마 운하 관리사무소 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배가 갑문으로 들어온 뒤 천천히 수문이 열리자 여기저기서 감탄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인류의 도전 정신과 기술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파나마 운하의 좁고 긴 수로를 지나며, 나는 단순히 물리적인 경로를 넘어서 나 자신이 겪어온 성장의 과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낙타, 사자, 어린이라는 세 가지 상징적 존재를 통해 설명합니다. 이 세 가지 단계는 인간이 사회적 규범과 외부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찾고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심리학에서 인간의 성장은 단순히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내적 변화와 외적 도전, 그리고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길을 떠나는 존재로, 인간이 사회적 규범이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가는 ‘당위의 시기’를 상징하지요. 권위와 의무에 대한 복종의 정신 단계에서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삶을 살아가며, 자신을 억누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 시기는 자아의 형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이론에서 ‘자아 정체감’은 중요한 주제인데, 청소년기부터 성인 초기까지 우리는 외부의 영향 아래서 자아를 형성합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자주 자기 자신을 잃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사자는 ‘자유의지의 주체’로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웁니다. 이 단계는 자아의 확립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외부의 기대에 맞추어 살지 않으며, 내면의 진정성과 자유를 추구합니다. 이때 우리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아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자아는 '그림자'와의 대면을 통해 완성되지요. '그림자'는 우리가 억제하거나 숨기려 했던,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우리 자신의 일면을 의미하며, 이 대면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통과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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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단계는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거치면서 인식하게 된 지혜를 바탕으로 창조성과 새로운 시작의 시기입니다. 니체는 어린이를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라고 묘사했습니다. 이 단계는 마치 삶의 모든 것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처럼, 우리는 세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과거의 틀을 벗어난 채 창조적인 가능성에 열려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 단계는 통합적 성숙기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마슬로우의 자아실현 이론에 따르면, 자아실현은 우리 각자가 가진 고유한 가능성을 완전히 펼칠 때 이루어집니다. 어린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낙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You should’라고 하고,

사자는 그렇게는 결코 살지 않겠다며 ‘I will’이라고 하고,

어린이는 그저 ‘I am’이라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입니다. 1844년 프로이센의 뢰켄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살 때 목사인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열 살 쯤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생의 마지막까지 시 창작을 멈추지 않았지요. 본 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하였고, 라이프치히에서 바그너와 교류하며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습니다. 1869년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1870년 보불전쟁에 위생병으로 참전하였다가 질병으로 제대하였습니다.

1879년 건강의 악화로 인해 바젤 대학을 퇴직한 뒤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양지에 머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으나,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광장에서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지고 나서 정신 착란 증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190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W.B. 예이츠, 라이너 마리아 릴케,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마르틴 하이데거, 알베르 카뮈, 장 폴 사르트르, 질 들뢰즈 등의 작가와 철학자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서로는 『비극의 탄생』,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학문』,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힘에의 의지』, 『이 사람을 보라』등이 있습니다. 



“ 어느 별에서 떨어졌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만난 걸까요?”

1882년 4월 말,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만난 젊은 여성에게 손을 내밀고 몸을 숙이며 우아한 말투로 ‘운명적인 만남’을 강조하는 첫인사를 니체는 매혹적인 루 살로메에게 건넸습니다.     

그러나 루 살로메는 니체와의 첫 만남 회상에서, “고독, 이것이 니체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초의 강한 인상이었다. 그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라고 그녀의 책에서 전합니다. 



이 사람을 보라의 서문에서 니체는, 

“ 내가 조만간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어려운 요구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내가 누구인지 밝혀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기 때문이오.  무엇보다도 나를 혼동하지 마시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각하는 타인에 대한 판단과 사회적 영향은 첫인상이 중요하다심리학 연구 결과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초두효과가 발생하는 원인은 맥락효과(처음에 제시되었던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들의 처리지침이 되고 맥락을 제공)와 주의 감소(첫인상의 강력한 효과로 인해 후기 정보에 대한 주의가 감소)와 더불어 후기 정보의 중요성이 초기 정보에 비해 가볍게 취급되는 중요성 절감 등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마도 니체가 원하는 만큼의 이해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당시 그의 첫인상과 인상 형성에 우리가 갖고 있는 오류(확증적 편파, 고정관념, 편견, 범주화 등)도 일정 부분 작동하지 않았을까요




종일 통과하는 파나마운하를 보며, 니체의 인간 정신 발달의 단계와 그의 삶 일부를 보았습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현지시각) 취임 연설을 통해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고 있다는 주장을 거듭 반복했다고 뉴스는 전했습니다. "중국이 현재 파나마 운하를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는 파나마 운하를 중국에 넘겨준 게 아니"라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파나마에 준 것이고, 되찾고자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매년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은 최대 1만 4000척에 달합니다. 이 지름길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과거처럼 남미 대륙 끝까지 돌아 비싸고도 먼 길을 가야 했을 것입니다.    

 

파나마의 전략적 위치를 고려하면 중국이 수년 동안 이곳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전통적으로 미국의 "뒷마당"으로 여겨졌던 대륙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경쟁해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뉴스는 전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마르티네스-아차 파나마 외무장관은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운하를 통제하는 유일한 주체는 파나마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파나마 운하의 주권은 협상 대상이 아님을 강조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데이비드 매독스 정치 부문 편집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일종의 제국주의적 트럼프"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 미국의 공간을 넓히고 싶어 한다. 이는 심각한 위협"이라고 설명하며 "트럼프 1기 행정부와는 매우 다른 접근 방식을 펼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나머지 전 세계를 매우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마무리했습니다.



한국이 ‘머니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하는 트럼프대통령의 임기가 그저 무사히 우리에게 불이익이나 피해가 없게 통과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길게 느껴졌지만 예상대로 안전하게 파나마운하를 통과한 것처럼 우리의 대내외 상황이 부드럽고 안전하게 통과되길 소망합니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 우리의 크루즈는 하루를 항해하여 에쿠아도르의  만타(Manta)에 도착하게 됩니다. 카리브에서 태평양으로의 항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하나의 이름에서 다른 이름으로의 통과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겠지요.


문득 박준 시인의 글 <시작>이 다가옵니다.


<시작>

‘시작’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마음속에 문이 하나 새로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 문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문고리 밑에

‘당기시오’라는 글자가 작게 적혀 있을 테고요    

 

시작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나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시간과 공간을 

얼마쯤 비우고 내어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밖으로 열리는 문이 아닌

늘 안으로만 열리는 문     

시작이라는 문... p. 15

-- 박준, <계절 산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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