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는 괴로운 활동 해 보기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마지막 훈련은 ‘회피하지 않기’ 입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유발되는 고통이 싫어서 피했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은 고통을 견디는 행동의 빈도와 밀접합니다. 고통을 유발하는 활동이나 과제를 피하면 고통은 유발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고통을 견디는 행동도 나타나지 않겠지요. 반대로 그러한 활동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면 고통이 유발됩니다. 성공적이든 그렇지 않든 고통을 견디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면, 그 다음부터는 포기하지 않기, 완화하지 않기 전략을 사용하면 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행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회피의 유혹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피하거나 줄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회피하지 않는 것은 그런 본성을 거스르는 선택이지요. 본성을 거스르려면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연구자들은 정서적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우리는 부정적 결과와 연결된 행동은 피하고, 긍정적 결과와 연결된 행동은 택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 특정 행동의 득실을 따지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과 갈등을 겪거나 싸우게 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연애를 몇 번 해 보았지만 매번 사소한 갈등을 견디지 못해서 헤어지곤 했지요. 그는 이제 연애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만남을 거의 대부분 피하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누군가를 알게 되었을 때, 그에게 접근하는 것은 분명한 이득이 있습니다. 연인관계로 발전할 수 있고, 나아가 결혼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그가 바라던 바입니다. 하지만 손실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상과 달리 잦은 갈등을 겪을 수 있고, 그 결과 결혼관계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고생만 하고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겁니다. 다른 무엇과도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관계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데, 그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지요.
머리로는 이득이 분명하게 예상되지만, 몸이 먼저 도망을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몸은 다른 말을 하는 것이지요.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의식적인 과정과 무의식적인 과정이 불일치하는 현상이 비교적 흔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불일치가 나타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 뚜렷한 이유는 정서적 경험입니다.
미국 오리건 대학 교수 폴 슬로빅(Paul Slovic)에 따르면, 어떤 선택을 고려하거나 실행했을 때 느끼는 정서적 경험은 우리의 몸에 기억으로 남습니다. 긍정정서를 경험했다면 좋은 느낌으로 기억하고, 부정정서를 경험했다면 나쁜 느낌으로 기억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정서적 기억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합리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이득이 되는 선택일지라도 ‘느낌이 좋지 않다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지요.
슬로빅 교수는 이러한 경향성을 원자력 발전소 유치에 대한 의사결정 연구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지방의 한적한 지역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지역은 경제적 성장성이 낮은 편입니다. 가난하지만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정부에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 인근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를 합니다. 물론 몇 지역의 후보들 중 하나이지요. 여러분이라면 이 계획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순식간에 의사결정을 하셨을 겁니다. 슬로빅에 따르면, 상당히 많은 수의 참가자들이 반대의견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랬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근거로 그런 결정을 내리셨나요? 결정을 내릴 때 떠오르는 이미지라던가, 감정 같은 것이 있었나요?
저는 원자력 발전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발전소로 1986년 4월에 폭발되었지요. 당시 사고로 피폭된 사람은 22만명에서 83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사망자는 최대 1만 6천명까지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현재까지도 피폭의 위험이 남아 있어 통제되고 있지요.
무시무시합니다. 그렇게 위험한 발전소가 옆 동네로 들어 온다니 안 될 말이지요. 부끄럽지만 이것이 저의 의사결정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굉장히 낮습니다. 전 세계의 수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하게 가동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또한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오게 되면 지역의 경제적 여건이 대폭 개선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렇게 많은 장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대합니다. 원자력 발전소와 관련된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기억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반복적으로 회피하는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활동이 중요하며 장기적으로 많은 이득을 줄 것이라는 점을 잘 알지만, 그 활동과 연결된 부정적 감정의 기억이 선택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피하지 않고 어떤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기억'을 먼저 다루어 줘야 합니다.
어떤 대상이나 활동을 피할 것인지, 아니면 피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때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감정의 기억은 네 가지입니다. 회피하는 것과 관련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 그리고 회피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이지요.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림에서 동그라미로 표현된 것이 감정입니다. 그림을 보면 감정들이 모두 양방향 화살표로 연결되어 있지요? 이것은 각 감정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서로를 억제합니다. 예컨대 회피하기의 부정적 감정은 회피하기의 긍정적 감정을 억제하고, 동시에 회피하지 않기의 부정적 감정을 억제합니다. 각 감정의 관계는 예를 들어보면 간단히 이해될 겁니다.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사례를 떠올려 봅시다. 그에게 회피하기는 대인관계를 피하는 것이고, 회피하지 않기는 대인관계를 직면하는 것입니다. 각각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대인관계 피하기:
1) 긍정 측면: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됨, 고통이 유발되지 않음
2) 부정 측면: 연애를 못하고 결혼도 못함, 관계에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음, 외로움, 스스로 못나 보임
대인관계 직면하기:
1) 긍정 측면: 연애의 기회가 생김, 즐거울 때가 있음, 외로움이 조금 줄어들 수 있음
2) 부정 측면: 심한 고통을 겪을 수 있음, 예상 못한 부정적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음, 또다시 실패할 수 있음
정리된 내용을 보면 대인관계 피하기의 긍정적 측면과 대인관계 피하지 않기의 부정적 측면이 서로 관련되어 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선택을 했을 때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기억이 남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네 유형의 기억을 일단 구분해 두는 것입니다.
각 선택에 연결된 긍정적/부정적 감정 기억이 서로를 억제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둘 중에 더 강한 기억의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겠지요. 긍정적 기억이 강하면 선택하고, 부정적 기억이 강하면 선택하지 않는 겁니다. 또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각 선택에 연결된 긍정적 감정기억들은 서로를 억제합니다. 부정적 감정 기억도 마찬가지이지요.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회피하지 않기가 선택될 수 있도록 회피하지 않기의 긍정적 감정은 강화하고, 부정적 기억은 약화하는 겁니다. 동시에 회피하기의 긍정적 감정은 약화하고 부정적 감정은 강화하는 것이 좋겠지요.
우선 회피하지 않기의 긍정적 감정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선택 상황에서 나의 가치를 되새기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회피하지 않고 직면했을 때 장기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나만의 가치를 떠올리는 것이지요. 혹은 회피하지 않았을 때 얻을 수 있는 또다른 보상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볼 수도 있습니다. 단기적인 것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낮아도 상관 없고요. 일단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직면했을 때 얻을 가능성이 있는 보상들을 나열하고 그 보상들을 얻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 보는 겁니다.
회피하지 않기의 부정적 감정을 약화하기 위해서는 예상하는 부정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음을 기억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나더라도 생각만큼 괴롭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또한 각성조절 기술을 충분히 배웠기 때문에 고통이 유발되었을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하면 좋습니다. 정서적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해진다는 점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할 작업은 회피하기의 긍정적 감정을 약화하는 겁니다. 회피하면 일시적으로 고통을 피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뿐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 효과는 일시적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불만족감이 다시 여러분을 괴롭히겠죠. 회피해서 얻은 것은 결국 고통을 줄이는 것뿐 그 외에는 별다른 이득도 없습니다.
회피하기의 부정적 감정을 강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회피로 인해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결과들을 떠올리는 겁니다. 회피는 또 다른 회피를 낳습니다. 두려운 대상을 회피하면 회피할수록 더 두려워지구요. 처음에는 호랑이만 두려워했는데, 나중에는 종이 호랑이마저 두려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감소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 외에도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꼼꼼하게 떠올리고 느낄수록 효과는 좋을 겁니다.
이 정도면 사전작업은 충분합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약간의 용기와 의지뿐입니다. 여기까지 잘 따라온 여러분은 이전과 다른 상태일 겁니다.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각성을 조절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지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 회피하지 않고 중요한 활동을 해 보는 겁니다.
일단 해 보면 생각보다 괴롭지 않으며, 적당히 견디면서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렇게 짧게라도 견디는 기회를 갖게 되면,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했다는 자부심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작은 보상을 얻게 될 수도 있지요.
물론 반대의 결과를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강한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정해진만큼만 버티다가 도피해도 괜찮습니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각성조절 기술이 익숙해지는 만큼, 고통을 견디는 빈도가 늘어나는 만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 또한 좀 더 수월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