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니 금세 잠이 들었다. 아이의 부드러운 등을 쓰다듬으니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을까. 부드러운 순면 같은 아이의 포근함은 내게 안정감을 준다. 어쩌면 다 큰 우리들에게도 쓰다듬과 토닥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인 우리들에게도 포근한 안정감을 줄 따스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독립된 인격체로 살아가야 하지만 때론 어린 시절의 결핍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발목을 잡는다는 걸 느낀다. 어린 시절 받았던 충분한 사랑과 인정과 부모와의 끈끈했던 애착관계가 건강한 독립체로 성장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추석이라 시댁에 온 가족이 모였다. 평소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막내 아이는 오랜만에 만나는 시댁 가족들이 낯설었는지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가는 듯 보였지만 대체로 내게 많이 안겨있었다. 매미처럼 내게 찰싹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잘 놀다가도 내가 보이지 않으면 바로 울음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런 막내를 보며 우리 남편도 충분히 부모님께 사랑과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막내는 현재 만 9개월이다. - 늘 챙김과 인정을 받길 원하는 남편은 시아버지와 똑 닮았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야단을 치는 것도 시아버지와 닮았다. 특히 둘째의 앵앵 대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바로 화를 내고 매를 드는 남편은 딸들과 나를 힘들게 한다. 아이는 그저 자신의 욕구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인데 그것을 표현의 방법이라 생각지 못하고 아이의 잘못이라 한다. 아이에게 잘못했음을 인정하라 하고 자신을 힘들게 했으니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한다.
둘째 아이는 자꾸만 떼쓰는 것에 혼을 나다 보니 아빠의 언성에 울기 바쁘다. 아빠가 자신에게 혼을 내는 듯한 말투를 듣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니 아이는 점점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하지 못하게 됐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다. 그런 아이를 보니 가슴이 미어지고 답답해진다. 그런 아이를 감싸다 보니 남편은 화를 조절하지 못해 내게 손을 대기도 한다. 살을 꼬집거나 주먹으로 머리를 때린다. 힘이 어찌나 세었는지 꼬집은 부분에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 나는 점점 무기력해진다.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자꾸만 목을 메어 자살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대롱대롱 매달려 죽은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너무나 끔찍한 일이지만 그런 장면이 떠오르는 걸 보니 내가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닌지 내가 진짜 괜찮은 게 맞는 건지 의심이 된다.
청소년 시절 '나 하나만 없어져도...' 했던 생각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남편이 베란다에 걸어둔 철봉과 철봉에 걸쳐진 스트레칭 밴드를 볼 때마다 자꾸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죽을 건 아니지만 자꾸만 그런 상상이 드는 내가 불안하다. 계속된 남편의 명령과 아이들과 나를 향해 쏟아붓는 화로 점점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간다. 아무리 내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다 해도 내가 나를 인정하기가 힘들다. 온전히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내가 하는 어떤 말에도 토 달지 않고 그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가만히 내 곁에서 나를 바라봐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님께 더 이상은 힘든 일들을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집 했는데 또 전화하고 말았다. 이혼할 거 아니니까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했다. 그러니 아이를 좀 봐달라 했다. 봐주겠다는 답변을 명확히 듣지 못했다. 다시 전화해 나 정말 sos 보내는 거라고 이제 더 이상 물러서거나 피하기만 하지 않겠다고 말하려 한다. 어떻게 평생을 주눅 들고 위축되어 살아가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화내는 아빠, 우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이 더 이상 희망을 갖지 못하고 좌절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남편이 화를 낼 때마다 집이 지옥이라고 말하는 첫째를 보며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앞으로 나아갈 실제적인 것을 실천해야 할 때임을 절실히 느낀다.
화를 잘 내고 명령조인 남편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저 남편도 부모님께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해 그런 거라는 걸 안다. 본인은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자라왔다 말하지만 그건 시어머니의 회피로 인한 것임을 느낀다. 한 번도 시아버지에게 큰소리 내지 못했고 그저 묵묵히 시부모님을 모시며 농사를 지어오셨다. 어머니의 참고 또 참음으로 인해 남편은 그것이 부부의 모습이고 가족의 모습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본인 또한 매우 엄격하고 무서웠던 아버지로 인해 두렵고 힘들었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그것이 자신의 가정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것일 거다.
남편이 화를 참지 못하는 걸 보니 분노조절장애가 아닐까 싶다. 네이버에 검색해 찾아보니 증상도 원인도 내가 생각하기에 딱 들어맞았다. 강압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온 사람이 분노를 참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 있었다. 분명 그것이 지금의 남편을 만든 것이 아닐까. 남편은 자신을 화나게 하는 원인이 다 아이들과 나라고 말하지만 그건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어릴 적 상황들을 자신의 가정에서 재연시키고 있는 것일 거다. 분노조절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선 상담을 받아야 하는데 본인이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단다. 남편이 과연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까.
남편이 자신의 원가족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받아 서운했던 모든 감정들을 흘려보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본인의 현재 가정 안에서 다시 행복을 채워나가길 바란다. 건강하고 수평적인 부부 사이가 되고 사랑이 넘치는 민주적인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아이들도 그런 부모를 보고 배우면서 집안이 꿈꾸는 곳이 되고 언제든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넘쳐나는 그런 가정의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너무도 노골적으로 나 자신의 불안과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써 내려갔다. 내 가정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울 수 있지만 지금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