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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mnjoy Jun 30. 2024

내 마음속 불안이가 의미하는 게 뭘까?

인사이드 아웃 2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인생을 산다는 게 가능할까?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을수록 나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을 같이 살아온 최초의 동반자이자, 결국 나와 끝을 함께할 유일한 존재. 바로 나. 나라는 존재를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 웃기긴 하다.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처 성인기에 와서도 나에게 이런 병이 있는지 이런 알레르기가 있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친했던 친구와의 대화가 거북해지고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다. 나의 머리는 이러면 안 된다며 말렸지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빗장을 걸어 잠 갔다.










내가 무언갈 원할 때마다 사회와 가정에선 그것의 안 좋은 점만 내게 보여줬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너의 재능으론 안 된다고 일축하고,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집안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힘들다고 했다. 모든 꿈이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오랜 시간 지속된 가정과 사회의 가스라이팅에 어린 나는 꿈을 접었다.


그리고 보았다. 재능이 없어 매일 글을 써 등단을 했다는 작가를. 집안에서 지원을 받지 못해 홀로 SNS에 홍보를 해 후원자를 모집했다는 화가를. 이들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일지. 나는 심히 고민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평범했고 내 목소리를 들을 줄 몰랐다. 나에게 집중하기보단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썼고 원치 않는 길을 가도 그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우겼다. 참 바보 같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내 말을 조금은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초중고 각각의 시기에 따라 부여된 목표가 있고 대학을 진학하고 나면 취업과 결혼 그리고 반복되는 삶이 당연하다는 듯 펼쳐진다. 요즘은 이 트랙에서 벗어나려는 바람직한 움직임이 보이지만, 여전히 녹록지 않은 길이다.



나는 취업까진 어찌어찌해서 한 라운드의 게임을 마치긴 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번아웃이 크게 왔고 나는 병원을 찾았다. 중간중간 갈망하던 꿈이나 하고 싶은 일을 제쳐두고 지금 시기엔 이걸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두려움. 이게 진짜 결국 나를 지진한 삶으로 이끌었다.



머릿속에선 끊임없는 계획들이 난무하고 계획 A가 실패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B부터 Z까지의 플랜들이 항상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과잉 사고. 두려움. 불안. 공황. 주의력 결핍. 우울. 무기력. 모두가 내가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따라오는 증상이었다.










병원을 다니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하니 남의 말에 휘둘렸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하는 소리가 그때 그 상황에서 정답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을지라도 나는 그 말을 믿어야 했다. 화가가 되고자 했어야 했고 작가가 되고자 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야 깨닫는 것들이 있다.


인사이드 아웃의 불안이가 사춘기가 되어 나온 것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등장하는 감정들을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상에 치여 내 마음속 하나 들여다볼 시간이 없는 게 현실이지만,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내야 할 만큼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아직 나에게도 이런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감정을 살펴보는 시간들은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감정을 살피는 데 쓴 시간이 오늘 외운 영어 문장이 주는 뿌듯함 보다 덜하다. 하지만 감정을 꾸준히 지속해서 살펴본다면 10년 후의 나에겐 엄청 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10년 전의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해 지금 이렇게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것처럼. 







감정을 살펴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렇게 일장 연설 했으면 이젠 어떻게 감정을 살펴보는지가 관건이다. 

나의 경우에는 병원을 다니면서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이런 것에 있어 완전 무지렁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마음에서 뭔가 불편함이 올라오고 부정적인 감정(예, 불안, 분노, 짜증, 우울 등)에 휩싸일 때 나는 그걸 먼저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왜 불편한지,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런 감정들을 마주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나는 나만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경우 성취감이 없으면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겨지면 우울해진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고 얕잡아볼 때 나는 분노에 휩싸인다. 나는 느낌이 싸하고 위험을 감지할 때 불편한 감정이 먼저 올라온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을 알고 이젠 이 패턴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울할 때 나는 청소를 한다. 분노에 휩싸이면 나는 글을 슨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 그 존재나 상황에서 일단 도망친다. 나만의 해결법이 차차 쌓여갈수록 나는 나와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고 힘들고 괴로운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사이드아웃 2의 불안이가 폭주하듯이 소중한 나를 폭주하도록 놔두지 말자. 나를 아껴주고 나의 귀한 부정적 감정들을 포근히 안아주자. 긍정적인 감정보다 이런 '부정적'이라고 여겨지는 감정들이 사실 나에게는 더 소중한 감정이고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끝으로 지난번 병원 상담에서 의사 선생님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조울증에서 조증은 내 생애 의지가 완전히 꺾여 죽기 직전까지 갈 때, 내가 완전한 바닥을 칠 때, 내가 나를 살리고자 모든 에너지를 끌어올려 조증 상태로 만든다고 한다(물론 그 뒤에 울증이 와 다시 소진 상태로 접어들지만). 인간의 몸이 정말로 신기한 것 같다. 내 뇌에서는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죽으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살려고 에너지를 끌어모은다는 것이.





우리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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