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그래프가 곤두박질 칠 때
나를 무엇으로 기록할 수 있을까?
내가 루틴 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는 것과 매일 밤 하루의 기분을 기록하는 일이다.
하루의 기분은 점수에 따라 기분이 좋을 경우 플러스, 기분이 나쁠 경우 마이너스로 기록된다. 며칠 후, 중앙의 선을 사이에 두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내 기분 그래프를 보면 스스로도 양극성 장애(조울증)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사람의 기분 그래프를 본 적이 없어 그들과의 차이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내 그래프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 중 하나는 짧은 주기이다. 2~3일을 주기로 기분이 급격히 상승 하강하는 것이 보통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 기분 주기에 내 인생은 큰 사건사고도 없었다. 그저 혼자 널뛰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일주일 간 내 기분은 봄과 함께 조증으로 돌아섰었다. 개인적으로 조증의 나를 아끼는 편이긴 하지만 이 친구만큼 무서운 나도 없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웃음이 많아지고 옷차림이 화려해졌다. 지금은 약을 먹고 있으니 이전처럼 큰 사고를 치진 않겠지만 자꾸만 기분이 좋아질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조증과 울증 그리고 보통의 나. 내가 착각한 것이 있다면 내 삶의 시간에서 마주해야 하는 이 세 명의 친구는 절대 순서대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증, 정상, 조증, 울증, 정상, 울증.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찾아오는 이 친구들을 나는 어느 친구 하나 제대로 맞힌 적이 없었다. 여기서 의사 선생님이 준 팁이 있다면 바로 ‘에라 모르겠다.’하는 태도였다. 누가 올지 나는 몰라요. 난 그냥 기다릴 뿐이에요.
이 때는 기록이 없네요?
기분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행운이다. 울증이 강하게 오는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뿐이다. 침대에서 나는 왜 오늘도 눈을 뜬 건지 한탄하며 눈 부신 햇살이 서러워 눈물이 흐른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데 씻고 싶진 않고 꼬르륵 소리가 들리지만 먹고 싶은 게 없다.
그러다 핸드폰을 들고 유튜브에 조울증, 양극성 장애, 우울증 등을 검색한다. 어느 것 하나 새로운 정보는 없다. 자살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몸을 일으켜 화장실까지 가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저녁때쯤 가족이 집에 오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첫 끼를 먹는다. 이들이 없다면 나는 울증 시기를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조증 뒤에 오는 울증은 그 여파가 클 때가 많다. 아파트 2~3층 높이에서 떨어지다가 갑자기 아파트 30층에서 떨어지게 되는 기분이다. 이런 높이에서의 낙하는 정말 위험하다. 생애의 의지가 사라지고 사람들과 관계를 모두 단절하고 싶어 진다. 내 쓸모가 있는지 내가 왜 죽으면 안 되는지 끊임없이 묻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왜 죽으면 안 되는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입을 턱 막아버린다. 그리고 이 시기에 내 기분 그래프는 공백으로 남겨진다.
삶에서 공백의 시기를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공백으로 보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미쳐있거나 곧 미칠 것이다. 공백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특히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 사람에게는 더 빨리 찾아온다. 공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휴식이라 할 수도 있고 불가피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내 기분 그래프에서 보는 공백을 과부하에 의한 정전으로 표현하고 싶다.
아마 이번 조증 이후 정전이 한번 찾아올 것 같다. 부디내가 이 정전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촛불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