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첫제사가 돌아왔다.
엄마는 또 걱정이 태산인 넋두리를 나에게 털어 놓는다.
“집에 짐도 많은데, 사람들이 많이 오면 앉을 대나 있겠나? 갑자기 보일러도 고장이 나고..”
“짐을 치우고 정리를 좀 해봐!! 버리는 걸 버려야 해!!”
나이가 드시니 이제 뭘 버리고 정리하는 것이 힘든 것을 안다. 멀리 떨어져서 산다는 핑계로 연세 드신 엄마 옆에서 뭘 하나 못 해준다는 생각이 드니 미안함도 든다.
그러는 찰나, 엄마의 말에 나는 발끈했다.
“그라모, 니가 큰집을 하나 사주던가!!”
“엄마가 큰집으로 이사가고 싶으면 엄마가 사야지 왜 나한테 사달라고 하는데!!”
엄마는 대수롭지 않는냥 웃는다.
“내가 사주라고 한다고 니가 사주것나!!”
“내가 그럼 이제껏 뭐도 안 사줬나?”
“아니, 집 사줄 능력이 안되는데 그걸 우찌 사주노 말이다. 농담이지?”
“그런 농담을 마음 쓰이게 왜 하는데..”
“엄마가 가지고 있는 거를 정리해서 버리고 있는 집을 넓게 써. 집을 사달라고 하지 말고.”
“아아. 시끄럽다. 고마 끊어라. 그런 소리 할라모. 싸우기 싫다. 끊어라.”
엄마는 농담이고, 나는 진담이었다.
정말 엄마는 농담이었을까? 전화를 끊고 씩씩거리다가 또 생각을 해 본다.
매번 잘 들어주지 못하는 딸인데도 그렇게 또 털어놓는 걸 보면 잘 들어줘야지 하는 마음도 들지만 속에서 천불이 또 일어난다. 내가 너무 민감한가? 다른 사람들은 넘어가는 말을 나는 왜 못 넘어가지? 아니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웃으며 넘겼을 텐데 엄마한테는 왜?? 정말 다정하게 대화를 하는 엄마와 딸의 표본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일단 어느 선에서 해결이 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나와 엄마 사이에서 아빠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다. 아빠는 아마 서로의 말을 통역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 말속에 엄마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 걸 안다. 하지만 혼자서 상처를 받는다. 혼자 받은 상처는 혼자서 잘 처리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현상을 보고 해석을 잘 해야 한다는데 마음 복잡한 이 상황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엄마의 의도는 농담이지만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도 다분히 있음을 안다. 하지만 엄마의 말대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 화가 나고,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집을 사달라고 하는 엄마의 당당함에도 화가 났다.
대화를 하다가 엄마의 말들 속에 꽂히는 말에 내가 발끈하면 엄마도 내말에 방어를 나는 그런 상황을 몰고 온 말주변에 스스로에게 짜증을 낸다.
인간이 지닌 한계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욕망을 적절하게 충족시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구(주1)하고 싶다.
서로 못난 부분을 봐주지 않고 외면만 했구나.
서로 다그치고, 상처를 줬구나.
서로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구나.
어떤 개인을 위하여 왕을 속일 수는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왕을 위해 한 개인을 속이기도 내게는 대단히 괴로운 일이며, 나는 속이기를 싫어할 뿐 아니라 남이 나로 인해서 속이는 것을 보기도 싫어한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런 일에는 단지 재료나 기회만이라도 제공하고 싶지가 않다(주2). 나도 분명 엄마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평소에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다. 서로의 묵인하에 이렇게 애증의 관계가 된 것이고, 엄마가 어떤 의도로 말을 했던 나도 엄마도 어떠한 치러야 할 뭔가를 이제는 남기고 싶지가 않다.
아빠의 부재 이후
엄마에게 화가 담긴 말투에서 ‘그럴수 있지!'을 생각하면서 조금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딸이고 싶다. 엄마와 나의 관계를 좋은 쪽으로 돌려야 한다. 쭉 가려는 관성을 무시하고 되돌려 놓는 것이 몇 배는 어려운 줄은 알지만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어느 정상선까지 궤도에 올려야 한다.
나는 엄마와 선긋기를 하고 싶었다. 이제는 서로를 다독여 줄 사람도 이해시켜 줄 사람도 없음을 안다. 앞으로 엄마와 더불어 잘 살아가려면 서로가 싫어할 만한 행동이나 말을 자제해야 함도 안다. 엄마도 나도 그 선을 잘 지키서 서로에게 앙숙이 아닌 건강한 모녀지간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전화 위복이 되고 싶다.
하늘에서 보고 계실 아빠를 위해서도, 엄마와 나를 위해서도.
그대의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대 자신이다. 그리고 모든 책임이 그대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일인가(주3).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를 자유롭게 놔주고 싶다.
엄마도 엄마의 시간을 찾아 갔으면 한다.
서로에게서 독립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렇게
만나면 서로 반갑게 맞는 얼굴이고 싶다.
주1> 에피쿠로스 저, 쾌락
주2> 몽테뉴 저, 에쎄
주3> 발타자르그라시안 저 나를 아는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