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스로를 아는 아이

by 지음


아이야.


사춘기에 접어든 너는 엄마의 도움 없이도 너의 존재를 어디에서나 드러냈고, 엄마는 드러내려는 너의 존재를 어쩌면 감추라고 말했던 것 같아. 아니 어떤 면에서는 의견도 묻지 않고 명령 아닌 명령했던 것 같아.


네가 많이 컸다는 것을 느낀 것은 아마도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중고 거래하기 위해 서울 외각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던 일이지. 그리고 만화책을 사러 1시간 거리에 있는 서점까지 다녀왔고, 축구화를 혼자 사러 다녀왔지.


사춘기가 되고 엄마의 손이 점점 없어도 되는 독립된 어른으로 커간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

하지만 엄마 품을 떠나 홀로 서려는 시도들을 보면서 엄마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어. 홀로서는 너를 응원하는 반면 너에게 엄마의 존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보였거든.

사춘기를 잘 넘기고 너를 응원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


“그렇게 멀리까지 가려면 엄마에게 미리 말하고 허락을 구했어야지.”

“너가 살까 말까 고민해서 샀을 축구화를 아무리 네 돈이지만 말은 했어야지.”

스스로 찾아보고 스스로를 믿고 행동하는 너에게 엄마는 잔소리를 했지.

넌 아마 스스로를 믿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그냥 한 것이였겠지.


순간 엄마는 헷갈렸어.

엄마가 잘한 말인지 아닌지.


엄마의 인식은 멀리갈 때는 부모님께 먼저 허락받고, 물건을 살 때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 하지만 넌 자기 용돈으로 무엇 사던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어. 그렇다고 너가 돈을 헛으로 쓰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누가 봐도 낭비를 하는 소비는 아니니 그냥 믿어주면 안되냐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그래서 다시 생각해 봤어. 엄마는 엄마의 방법이 옳다는 걸 어떻게 판단했던 걸까? 그냥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쌓인 외부로부터의 생각을, 그렇게 엄마를 엄마가 배운대로 너에게 전하고 있었어. 엄마가 컸던 방식대로. 갑자기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는 간섭을 해야 하지만 넌 스스로 잘하는 아이인데도 엄마의 욕심으로 너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어. 남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말이야.


사춘기인 너는 이제 네 주변의 일상의 일은 스스로 옳은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나이이고,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스스로 가릴 수 있는 나이니까.

엄마는 아직 너를 엄마의 손이 필요한 아이로 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된다.


지인이 말씀해주셨어.

이란은 여자들이 나와서 대접할 수 없으니 장자가 나와서 아버지 옆을 지킨다고.

손님의 찻잔이 비어있으면 차를 따라주는 역할을 도맡아서 말이야.


그 때 할아버지 장례식이 떠올랐어.

할아버지 돌아가셨을때 너에게 부여한 장자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어.

끝까지 아빠와 삼촌 옆에서 오시는 손님을 다 맞이했지.

엄마는 네가 할아버지 돌아가셨으니 상주노릇을 하는 것은 또 당연한 것이라 여겼어.

엄마의 생각은 필요 없었어. 그저 그것 또한 너의 결정이었어. 아무리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들 네가 하기 싫으면 끝내 하지 않는 아이인데 그렇게 한 것은 너가 내린 결정이었던 거지.


엄마는 네가 의견을 표현할 줄 알고, 분별있게 상황에 맞게 행동하고, 그리고 부모와의 경험말고도 친구랑 할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하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았지. 또 첫째 키우는 엄마는 사서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해버렸어. 밖에서 스스로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너를 보며 엄마의 기우였다는 것도 알았지.


이제는 엄마의 아들이 아닌 정말 세상에 풀어 놓고 네 스스로 경험하며 커야한다는 것도 알아가는 것 같아. 너는 그렇게 너를 세상 밖으로 성장하기 위해 뛰어들어 의무를 했지만 엄마는 네게 의무를 다하고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인정을 해주지 않았구나.

의무만 다하라고 계속 너에게 말했구나.


뭐든 여러 방면으로 시도해 보는 나이인데 말이야.

이참에 엄마도 엄마에게 더 집중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려야겠지.

지금의 너는 잘해나가는 중이니까.

그렇게 우리 상호독립적인 모자지간이 되자.


서로 버럭버럭하지만 와서 안겨줘서 고맙고, 사랑한다. 아이야.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28화우리는 야구르트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