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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어느 추운 새벽의 단상

by Zarephath

이제 이시간에 잠이 깨서 글이라도 써볼라 하면 날씨가 제법 쌀쌀한 게 보일러를 돌려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엊그제까지 더워서 죽는다고들 난리였는데, 이젠 더위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어떻게든 생존을 하고 인류는 언젠가는 종말을 고할 것이다. 인류의 종말에대해 말이 참 많다. 특히나 2000년전 초기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의 메시아적 종말사상을 아직까지 믿는 이들을 보면 정말 종교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나는 일류가 공멸, 자멸할 것으로 생각한다. 더 이상 인류가 정착할 새로운 행성을 개발하여 인류가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자멸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행성에 안착하여 살게 되면 거기서도 종교는 힘을 발훠할 것이다. 화성이라면 화성에도 역시 살아계신 신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그럴 것이다. 뭐 그게 불만은 아니다. 인간의 유전저에 신을 찾는 것이 디자인되어 있다면 지옥에서도 신을 찾을 것이 인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적 3층천 위에 계시던 신은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오기도 하시고 인간들이 탑을 쌓으면 뭣들 한는가 보러 오시기도 하기고, 인간의 생노병사에 응답도 잘 해 주시고, 그런 가까이 계시는 분이셨다. 그러나 우주가 3층천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우주의 범위가 확장될 수록 신도 그것을 초월하는 분으로 점점 확대되어 가야만 했다. 인간의 지성은 고대적 신을 더 이상 섬기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영원이 팽창하는 우주의 어디에서 또 얼마나 팽창해 가며 계실 것인가? 그렇게 신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여 우리를 초월하는 그 어떤 존재로 세워 놓으면 뭐가 좋은 걸까?

물론 인간은 연약한 존재다. 기도가 필요할 때 그 대상이 필요하고 복이 필요할 때 그 복을 빌어야 하고 재난이 닥쳤을때 빨리 그것을 벗어나여 하는 존재이다. 나의 능력 밖의 것들이 나의 삶을 공격해 올때 유리는 흔히 신을 찾는다. 그게 우리에게 본능적이고 가장 쉽고 가장 간절해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신은 이제 어디 계시는가? 탑을 쌓아 대면해야 하는가? 삼층천 위를 바라가 보며 빌어야 하는가?

진정한 신의 무소불위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이 과연 우리의 말초적인 종교적 욕망에 부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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