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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3

by Zarephath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특수부대 출신도 아니고, 심지어 액션배우도 아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카페 안에서 내가 그녀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녀를 부등켜 안고 있는 것 뿐이었다. 무서운 총탄 세례가 끝난 후 갱 두목이 내게 물었다.‘자네는 자네가 왜 죽어야 하는지 아나?’난 고개를 저었다.‘사실은 나도몰라. 나도 부탁 받고 죽여 줄 뿐이거든.’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아일랜드의 어느 바다 절벽 위 작은 오두막 집이었다. 난 작가들 취재하러 다니는 기자였고, 그녀는 화가였다. 그녀는 그 곳을 사랑했다. 바다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의 조각들, 그 살아있는 물방울들을 그려내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녀는 그 오두막을 샀다. 그래서 거의 거기 살다시피 했다. 신인작가 공모전에도 그런 그림을 출품하여 대상을 받은 경력이 있는 그녀는 바다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 조각이 거의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녀는 신인작가 공모전에 대상을 수상하고 등단한 다음 얼마 안 있어 이혼을 했다. 그냥 성격차이라고 했으나 아마도 그녀의 작품활동이 결혼생활과 양립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미술하는 여자, 이해해 줄 가부장 적인 남자는 별로 없지. 이혼을 한 후 그녀는 거의 매일을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다 영감이 필요할 때면 거의 항상 아일랜드의 이 공간을 찾다가, 아일랜드로 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이젠 거의 아일랜드의 이 곳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혼을 한 후 여자는 거의 작품에만 매진하며 잘 살았다. 오히려 결혼생활을 함께 하는 것 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그러나, 남자는 그렇지 않았나 보더라. 아마도 미술이 아내를 빼앗아가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파탄낸 원흉이라 생각하는것 같았다. 결혼 전 그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꽤 가정적인 여자였단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정도는 취미 생활 하나 정도로 남편이 봐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림은 취미가 아니었다. 그녀의 모든 것 이었으며 마침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정식 작가가 된 것이다. 정식 작가가 된 후 그녀는 작업에 더 매진하게 되었고, 삼시세끼가 제때 준비되지 않거나 목욕물이 준비되지 않은 집에 들어가는 것이 그에게는 지옥 같았다. 그래서 증오심이 싹텄고, 그녀에 대해, 미술에 대해, 아일랜드에 대해 그는 이를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혼 후 그는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아일랜드로 향했다. 그녀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서 였다. 카페-오두막-카페-오두막… 비교적 단순했다. 단순해서 살인청부 하기에는 편했다. 그는 근처의 살인 청부 업체를 물색해서 그녀를 죽여주기를 의뢰했다. ’왜 죽일려고 그러시오?‘’아내가 미술 작가가 된 후 가정을 돌보지 않다가 이혼을 했소.‘’아! 그렇소? 이상하군. 아내가 작가가 되면 돈도 벌고 좋지 않은가? 됐소. 내 살인의 사정은 별로 궁금하지 않으니 얼마나 줄지나 들어보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의뢰는 이루어 졌다.

나는 작가님을 인터뷰 하기 위해 장소, 시간 등을 정했다. 작가님이 항상 가는 카페에서 저녁 식사 후, 거기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여러가지를 물을 생각이었가. 바다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의 그림에 왜 그리 집착하는지, 이혼 후와 이혼 전을 비교할때 작업에 어느 편이 좋은지 등등. ’작가님, 안녕하세요. 여기예요.‘나는 작가를 보자마자 인사를 건냈고 작가도 반갑게 인사를 하며 우리는 어울렸다. 식사를 하고, 흑맥주를 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부서지는 파도 조각을 그리는 것은, 언젠가 제가 그렇게 될 것 만 같아서 예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이 아일랜드에서 난 그렇게 부서질 것만 같아요. 이혼 후 작업하기 좋을 것이라고 다들 상상 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 사람이 미술을 얼마나 이해하건 간에 제가 의지가 되면 의지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는 데 갑자기 박에서부터 총탄이 날아들었다. 그러더니 갱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고 작가를 부둥켜 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음 당신이군’ 갱 보스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즉각 그녀를 죽였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그 카페에서 또 총격이 있었다는 기사가 났다.

워낙 일을 깔끔하게 처리한 탓에 수사를 해도 용의자 조차 용의 선상에 올릴 수 없었다. 그 남편은 한국에 있었고. 그렇다고 갱들의 세력싸움 같은 걸로 보기에도 어이가 없는 사건 이었다. 이대로 남편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넘어갈 사건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괴로왔다. 사랑하는 아내를, 그저 미술을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처참히 죽이다니. 시신을 두고 가족 신원확인 등을 할 때 남편이 직접 했다. 그는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고 갖은 연기를 다 했으나 그런 자신이 너무 무서웠다. 그는 자수하기로 했다. 어느 날, 경찰서로 찾아간 남편은 모든 것을 말했고, 살인 및 살인청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제 삼시세끼와 목욕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곳에서 평생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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