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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통일

by Zarephath

내가 어릴적 살던 아파트는 빈민가 가운데 쌩뚱맞게 세워진 위풍당당한 아파트였다. 길도 아파트를 따라서는 잘 닦인 포장도로 이다가 아파트에서 멀어질 수록 땅이 진창인 채로 버려진 그런 곳이었다. 아마도 땅값이 싸서 건설사에서 사다가 거기 지어 팔았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아파트 주변은 철조망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예전 같으면 바로바로 지나가던 길이 아파트 사유지가 되면서 도로를 통재해 멀리돌아가는 일도 생겼다.

어른들의 일은 더 이상 모르겠고, 아이들의 세계에도 그런 긴장감이 있었다. 아파트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놀이터는 주민 자녀 외 출입금지였다. 그래서 놀이터 입구에는 항상 쫓겨나는 바깥 세상 애들로 북적적거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숨어든 애들은 놀이터에서 놀다 가곤 했는데, 그러다 전쟁이 터졌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폭탄이 날라다녔는데, 다른게 아니고 진흙을 뭉쳐 서로 날려댄 것이다. 그 중에는 진흙에 폭죽이나 화약을 넣어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바깥 세상에서 짱을 먹던 애가 나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싸움이라곤 잼병인 우리 형이 울면서도 내 대신 싸워 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갈등관계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는 법, 우리반에서 젤 예쁘던 여자애가 바깥 세상 소속이었다. 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그 아이를 우리 집에 놀러 오게 해 같이 놀이터에서 흙장난도 하고 잼있게 놀았다. 아! 그런에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 아이의 오빠가 바깣 세상의 짱을 먹던 어둠의 제왕이었던 것이었다. 나와 우리 형과의 감정도 그리 좋지 않던 그 아이의 오빠는 그 아이에게 다시는 아파트에 놀러가지 말도록 명령했고, 그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따랐다. 하루는 ‘얘 오늘 우리 집에 놀러가지 않을래?’라고 물었더니 ‘나 이제 아파트에 못가. 우리 오빠가 가지 말래’ 라는 것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파트 그게 뭐라고 아이들 좀 노는 걸 분리 시키려고 한단 말인가? 나는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바깥 세상 아이들을 다수 초청하여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고 나름 그 경계를 없애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렇지만 그 경계는 쉬이 없어지지 않고 더욱 공고해지기만 했다. 난 모험을 감행했다. 별로 사이가 좋지 않던 바깥 세상 아이들과 공모하여 철조망을 걷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밤 늦게 연장을 들고 밖에서 안에서 철조망을 자르다 보면 그깟거 금방 걷어낼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사의 날을 정하고 각자의 장비를 점검한 후 우리는 안과 밖에서 철조망을 자르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쉽게 잘려져 나가진 않았다. 그러나 열심히 자르기를 계속했고, 얼마 안가 경비 아저씨에게 걸리고 말았다. 애들이 한 짓이니 기물파손이니 뭐니 해서 사법책임을 묻는 일은 없었고, 단지 반성문을 10장씩 써 내게 했다. 그 이후로 두 세계의 경계막은 더 공고해졌고 감히 허물 생각을 하시 못하도록 만들어 졌다.

놀이터 그게 뭐라고, 애들 좀 들어와서 놀 수도 있는 것이지, 그 당시 어른들의 처사가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배운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뼛속까지 각인된 계급의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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