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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Oct 24. 2024

어떤 이별


출근길, 동네 내리막을 내닫는다. 버스를 놓치면 큰일이다. 헉헉~ 버스가 마지막 사람을 태우고 있다. 조금만 더 뛰면 잡을 수 있다. 영희는 죽을 힘을 다해 달렸고 버스 타는 데 성공했다. 버스에 들어선 영희는 앉을 자리 보다 누군가를 찾는다. 두리번 두리번~ 한참만에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철수를 발견하고 영희는 그 좁은 버스 안에서도 나름 달려서 철수의 품에 안긴다. ‘좀 늦었네?’’응, 어제 회식’’많이 마셨어?’’아니~’ 그렇게 영희는 버스 손잡이가 아닌 철수를 붙잡고 직장까지 갔다. 둘은 한 직장을 다닌다. 그러나, 사내 연애는 비밀이다. 그래서 내릴때는 조금 거리를 두고 내린다. 그렇게 서로 모르는 사이인양 출근을 한다. 그리고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시간, 자기 둘만의 비밀의 장소가 있다, 지하 보일러실 같은 곳인데 점심시간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 둘은 그 곳을 그들의 비밀의 장소로 정했다. 둘은 거기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영희가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 맛있게 먹고 오후 일과를 보냈다. 오늘은 둘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각자 극장까지 가서 만나기로. 그렇게 무슨 비밀 작전이라도 하듯 둘은 연애를 한다. 그리고, 오늘은 영희의 집에서 자기로 했다. 휴~ 피곤한 하루였다. 둘은 와인을 한잔 기울였다. 철수가 묻는다. ‘힘들지?’’뭐 직장 생활이 다 그렇지’’아니 우리 이렇게 만나는거’’그래도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까지 알릴 순 없잖아?’ 그렇다. 커플이나 부부는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 이 무슨 전 근대적인 회사인가? 울며 겨자먹기로 이렇게 지내는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 결혼하면 한 사람 그만 둬야 되는 거야?’철수가 묻는다. ‘글쎄, 강요는 아닌데 분위기는 거의 그렇지.’ ‘에잇, 씨 어떻게 들어온 회산데…ㅠㅠ’ ‘괜찮아’철수가 영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한다. ‘빨리 한 사람이 이직을 하던지 해야지.’ 안 그래도 영희는 요즘 이직 준비 중이다. 그 동안의 자기 성과나 업적 등을 정리해 두고 있다. ‘정말 불공평해. 둘이 사귀면 한사람 나가라니. 이런게 어딨어? 아니 그러면서 이게 뭔 일자리 나누기 같은 거라네. 참 나 기가 막혀서.’ 철수는 담배만 깊게 한모금 빤다. ‘그냥 자자.’ ‘그래’ 둘은 다음날 똑같이 어색하게 같이 버스를 타고 어색하게 같이 버스에서 내렸다. 

둘은 모두 명문대 출신 엘리트였다. 입사 동기인데, 둘이서 수석과 차석을 했다. 일도 둘다 매우 잘해서 근평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나간다면 회사에서 붙잡아야 할 판인데, 사귄다면 한사람이 나가야 된다니. 정말 전 근대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출근을 했는데, 뭔가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린다. 알아보니, 뉴욕 지사 파견근무 지원을 받는데, 남녀 각1명이라 한다. 철수와 영희는 이게 하늘이 주신 기회라 생각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운 눈을 마주쳤고 고개를 끄덕였다. 피견직원은 시험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시험이라면 둘다 자신 있었다. 둘은 잠시 만나는 것도 미뤄두고 죽어라고 공부했다. 마침내 시험일, ‘어땠어? 잘 본 것 같아?’ ‘어, 머, 그럭저럭’ ‘그럭저럭으론 안되지 잘봐야지’ ‘하하’. 결과는, 철수, 영희 둘이  뽑혔다. 이건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다. 퍄견기간 3년에 희망시 연장 가능이란다. 아! 이 얼마나 이 얼마나… ‘자네 둘 잠깐 보지’ 부장님이 둘을 부른다. 둘은 들어갔다. ‘자네 둘 말은 안했지만 말이야 둘이 어떤 사이인지 알고 있어. 그래서 이번 일이 자네 둘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랬는데 정말 잘됐네.하하. 축하주라도 한잔 해야지?’ ‘아, 네 , 부장님,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고…’ ‘내 아네. 내 알아. 거 뭐 인사상 불이익 그런 것 때문이었겠지. 이제 그런거 신경 끊고 미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 보라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은 부장님을 모시고 셋이서 만취될 때까지 마셨다. 

이제 하나 둘 미국 갈 준비를 한다. 영희는 업무 인수인계서 부터 만들고, 중요도에 따라 적합한 인물에게 일들을 배분하고,,, 신나게 준비하고 있다. 철수도 바쁘게 업무 인수인계서를 만들고 일하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표정이 좋지 않다. 왜 저렇지? 영희는 의아했다. 그 누구보다 행복해야할 순간에 저 사람은 표정이 왜 저런가? 점심시간에 영희가 물었다. ‘자기, 미국 가는거 싫어?’ ‘아니, 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 뭔가 중요한 걸 두고 가는 표정이고. 아! 자기 강아지 
때문에 그래? 강아지 데려 가도 되. 미국은 그런거 괜찮을 것 같은데?’ ‘강아지 때문이 아니고,,, 그냥 좀 바빠서…’뭔가 이상했다. 철수에게 미국에 가서 좋지 않을 일이 무엇인가? 부모님도 다 건강하시고, 가정에도 별 일 없는데… 그래, 갑자기 큰 일이 닥치니 예민해서 그럴 거라고 이해하기로 하자. 영희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철수가 차를 하나 샀다. 아니 좀 있으면 미국에 갈 사람이 차는 왜 여기서 사는 건지 도저히 이헤가 안갔다. 따져 물었더니, 뭐 조건이 너무 좋아서 샀다나… 하여튼 요즘 좀 이상하다. 차를 산 이후 철수는 영희의 출퇴근을 차로 시켜줬다. 뭐 이건 좋았다. 그런데, 어느날 업무가 좀 밀려서 철수더러 먼저 가라 그러고 난 야근을 좀 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철수의 집으로 갔는데, 철수의 차 안에 다른 여자가 타고 있다. 철수는 차 안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고 있고, 여자는 울고 있다. 울더니 휙 뛰쳐 나와 어디론가 뛰어가는 것이었다. 철수도 따라서 뛰어 가다가 포기하고 그냥 그녀의 뒤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철수의 집에 초인종을 눌렀다. 철수의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조용히, 조금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철수는 애써 침착하려 하더니 ‘아~ 그거, 여동생인데 동생이 돈 빌려 달래서 싫댔더니 울다가 간거야’라고 했다. 영희가 물었다. ‘너, 여동생 없잖아.’ 철수가 말을 더듬는다.’아~아아아아 저저저기 친동생 말고 사촌, 사촌 여동생.’ ‘똑바로 말해. 지금 솔직하게 말하면 딱 한번 용서할 수 있어. 그렇지만 지금 거짓말하면 모든 게 끝이야. 철수는 4대독자이고 철수의 어머니는 무남독녀이다. 철수는 고개를 떨구더니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는,,,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몇달 전부터 잠깐씩 만나는 여자가 있었어. 내가 먼저 접근한 건 절대 아니야. 그여자가, 그여자가 날 유혹한 거야. 그래서 몇번 영화보고 공원 같은데 가고 한게 다야.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어. 제발 믿어줘.’ ‘그래. 내가 속직하게 말하면 딱 한번 용서한다 했으니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 근데, 미국 안가. 여기서 결혼해. 내가 직장을 그만 두던지 옮기던지 할테니 여기서 결혼해. 미국 안가.’ 영희의 말은 너무 단호했다. 철수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호했다. 결국 두 사람은 뉴욕 지사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영희는 사직을 하였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결혼은 그리 빨리 성사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가 바람피는 장면을 목격한 여자가 선뜻 결혼이 해 질 리가 없다. 영희는 곧 다른 직장에 취업을 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그런 어정쩡한 상태로 계속되었다. 한 번 깨어진 신뢰는 그렇게 쉽게 회복되지가 않았다. 양가 부모님들도 걱정이 많아졌다. 두 사람 만은 별 탈 없이 결혼해서 잘 살 것 같았는데, 갑자기 미국행도 포기하고 관계도 소원해지는 것 같으니 애가 탔다.    

그런던 어느날, 두 사람은 철수의 차를 타고 한강 시민공원에서 야경을 보고 있었다. 영희가 말한다. ‘너 이 차 살때부터 나랑 미국 갈 생각 없었던 거지?’ 위잉~위잉~ 때마침 철수의 전화기에 전화가 온다. 철수는 받지 않는다. 영희가 말한다 ‘받아. 받으라구. 그 여자 아니야?’ 철수는 말 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다. ‘영희야 미안해, 나 이 여자랑 못 해어질 것 같아.’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그래 나랑 해어지잔 말이구나. 알았어.’ 영희는 철수의 차에서 내려 곧바로 집으로 왔다. 영희는 울지 않았다. 이미, 오랜 시간 연습된 이별이었던 터라 담담했다. 키우던 고양이 집 나간 거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희에게는 영희의 삶이 있다. 직장도 있고, 가족도 있고… 일단은 그런 것들에 충실하며 담담하지만 씁쓸한 이 이별의 상처가 빨리 치유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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