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arephath Oct 18. 2024

어느 취준생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는 카페 창밖의 풍경이 되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년 닥치는 구역질 나는 재난일 뿐이다. 오늘도 배수로가 막혔다. 하수도가 역류하여 오퍠수가 집 안으로 들어오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똥물을 뒤집어 쓰고 물을 퍼내고 있다. 매년 정치인들은 대책을 세울거라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대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늘, 나도 내 방에 차고 넘치는 오폐수를 퍼내느라 온 몸은 똥물로 젖었다. 젠장, 내일이 면접인데. 하루 종일 물을 퍼내는 중노동을 마치고, 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는 면접 장으로 향했다. 당연히 취업 면접이다. 밤새 퍼낸 똥물 탓인지 몸에서는 악취가 났다. 같이 면접을 대기하는 사람들도 코를 킁킁거리며 이게 무슨 냄새인가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장에 들어서자 마자 면접관들은 악취로 인해 인상을 찌푸린다. 조졌다. 이런 저런 질문을 하던 면접관들은 그게 무슨 냄새인지 물었다. 나는 솔직히 얘기했다. 어제 있었던 참사를. 대충 알았다고 얘기하는 면접관의 표정에서 나는 이번에도 낙방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결과는 문자로 왔다. ‘저희 상사에 지원해 주서스 감사합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함께 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뻔한 문자를 씁씁할게 쳐다 보고는 나는 거의 폐가가 된 나의 방으로 향했다. 아직 정리할 것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습기로 꿉꿉한 방에 들어서자 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 나라도 낙방 시켰겠다. 가재 도구 중 쓸만한 것들만 따로 두고 나머지는 모두 내가 버렸다. 저런 것들을 다시 사면 그것도 돈인데. 나는 이웃집에서 내다 버린 것들 중에서 쓸만한 것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그래봐야 이 좃같은 인생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겠지만, 일단은 아끼고 봐야 한다. 내일도 면접이다. 제발 내일 까지는 이 악취가 사라져야 할것인데. 나는 사우나로 향했다. 몸을 깨끗이 씻고 세탁소에서 새 옷을 빌려다가 면접장으로 갔다. 다행이 악취는 나지 않는 모양이다. 일단 면접관들은 내 스펙을 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해외 어학연수에 높은 토익 점수에 갖가지 자격증들,,, 어디 내놔도 뒤쳐지지 않을 스펙이었다. 면접관들은 이런 인제가 왜 아직 취업을 못했는지 궁금해 했다. 뭐, 사연은 많다. 회사에서는 오라는 데 내가 안간 경우, 채용했다가 나한테서 나는 반지하 냄새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불평이 심해 채용이 취소된 경우, 너무 큰 대기업에 지원했다가 미역국 먹은 경우,,, 그 동안의 취업 실패담을 다 담을려면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이번에는 예감이 좋았다. 예상대로 합격 문자가 왔다. 내일부터 출근이다. 그런데 이 반지하 냄새가 문제다. 몇일만 지나면 사무실을 진동할 것이고 다들 머리 아파서 일 못하겠다고 할 것이 뻔하다. 나는 최대한 매일 샤워를 하고 향수를 뿌리고 출근을 했다. 그러나 깊은 내공을 자랑하는 반지하 냄새를 이기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나는 수시로 향수를 뿌려대며 이를 악물고 직장에 붙어 있었다. 나름 효과가 있었는지, 이번 신입은 냄새가 독특한데 향수를 많이 써서 그런가보다 하고 다들 넘어가는 분위기 였다. 다행이다. 이제 나도 엄연한 중소기업 직장인이다. 그 직장의 알량한 봉급으로는 반지하를 탈출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저축을 하고 제테크를 해도 지상의 옥탑방 하나 구할 돈이 구해지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나름 직장인인 내가 언제까지나 이런 반지하에 있을 수는 없었다. 방법은 대출, 처음엔 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소득이 발생한 기간이 너무 짧아 불가하다고 한다. 제2 금융권엘 갔다. 대출은 가능한데 이자가 너무 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상 옥탑방 정도 구할만한 돈을 빌린 후 나는 즉시 이사를 했다. 드디어 반지하에서 탈출을 한 것이다. 정말 감격스러워 혼자 삼겹살 파티를 했다. 이제 옷이며 가재도구 속속들이 벤 반지하 냄새도 서서히 없어질 것이다. 옥탑방에서 출근한 첫날, 나는 정말 비장한 각오로 일했다. 이 직장이 있어야 이자를 감당할 수 있고, 또 더 좋은 집으로 이사도 할 수 있다. 너무 일을 비장하게 해서 그런지, 아주아주 중요한 일을 빠트려 버렸다. 회사 계약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서류를 챙기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날 부로 해고됐다. 젠장. 안될 놈은 뭘 해도 안된다고, 나는 다시 옥탑방 보증금을 빼서 대출을 갚고 남은돈으로 쪽방촌으로 들어갔다. 거기는 반지하보다 더 한 지옥이었다. 사람이 죽어도 경찰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도 취업 준비를 했다. 나같은 인제는 언제 진가가 발휘되도 되는 것일 것이다. 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붙들고 취업 준비를 했다. 사실, 취업 준비 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것도 없다. 그나마 취업 준비라도 하고 있는 순간 만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난 그냥 바퀴벌레 한마리와 다른 게 뭐가 있는가? 서러운 눈물을 닦고 나는 다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기다렸다.

쪽방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 같은 취준생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총으로 피의자 죽이고 파면당해 온 경찰, 목사라고 사기치다 들켜서 쪽박파고 온 사기꾼, 독거 노인들, 학교 행정실에서 일하가 공금 횡령해서 감옥 갔다온 사람 등등, 세상의 바닥의 바닥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쪽방촌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옷도 제대로 안 입고 신발도 제대로 안 신은 채 돌아다니곤 했는데, 아침마다 양복을 차려입고 나가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나는 그런 것에 주눅들지 않고 꿋꿋이 매일 양복을 차려입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오늘 면접본 곳은,,, 어선의 선원이었다. 나의 모든 스펙을 무력하게 만드는, 취업계의 바닥을 의미하는, 그것이 내게도 찾아왔다. 한 1년만 배 타고 돌아오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하기로 했다. 내 주제에 이런일 저런 일 가릴 처지가 아니다. 하겠다고 대답하고 출항할 날짜까지 받아왔다. 그 날이 다가온다. 난 그때까지 갈등에 휩쌓여 있었다. 이대로 망가질 것인가? 나는 결국 가지 않았다. 대신 약속을 어긴 댓가로 조폭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쪽방촌에서서도 떠나야 했다.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여기라면 조폭도 찾지 못할 것이고 취업준비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 피터지게 공부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취업 서적이란 서적은 다 섭렵했고, 스펙도 만만치 않다. 그런 내가 왜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것은 모두가 반지하, 쪽방촌, 고시원이 원인이다. 내 출신이 그 모양이니 어느 누가 받아 주겠는가? 악취를 풍기는 인간을 누가 받아 줄 것인가?

나는 하루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이 세상에 반지하란 반지하는 다 없애버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석유 몇 드럼을 샀다. 그리고 내가 살던 반지하부터 석유를 뿌리기 시작해서 그 동네 반지하엔 거의 다 석유를 뿌렸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불은 일순간에 타올라 반지하 뿐만 아니라 지상의 가구들도 불길에 휩쌓였다. 나는 속이 시원했다. 이걸로 그 간의 억눌린 인생이 조금은 보상받는 듯 했다. 그리고 니는 몇일 후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교도고에서도 나는 취업 준비를 했다. 언젠가 출소를 하게 되면 취업을 할 생각이었다. 성실히 준비했다. 의외로 단순한 교도소 생활이 취업 준비를 하는 데는 안성 맞춤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지 않아도 교도소에서 숙식을 해결해 주니 나는 그냥 공부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만은 취업에 성공하겠노라 나는 다짐했다.


이전 04화 성전환 수술 전문의사가 된 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