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은 두집 살림을 한다. 정식으로 결혼한 아내와 아들하나, 결혼 전부터 사귀다 부모의 반대로 결혼에 실패했으나 관계를 지속하다보니 생긴 가족-딸 하나 딸림-.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한집 살림만 해도 하루가 지나면 탈진할 판인데, 두 집을 동시에 챙기려다 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저녁은 본가에 와서 먹지만 한번씩 상가집 간다거나 야근 한다는 이유로 불륜집에 와서 먹는다. 그러나 방학이나 휴가에 애들 데리고 놀러 가는 일 등은 두번씩을 해야 한다. 애가 열이 나도 두 집을 동시에 챙기다 보니 애가 안아픈 날이 거의 없고 두 여자는 김부장만 바라본다.
생활비도 두배로 든다. 어디 적금이나 보험 같은 것은 꿈도 못꾼다. 아~ 이대로는 도저히 못버티겠다고 김부장은 생각했다. 한 쪽을 정리는 해야겠는데, 둘다 마음이 편칠 않고 두 여자 모두 경제력이 없어서 정리당한 어느 쪽도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김부장은 이게 팔자려니 생각하고 다시 이를 악물었다. 하루는 아내가 하도 꼭 가야 하는 행사라며 애들 학교 행사 초청장을 내밀기에 어쩔 수 없이 갔더니 불륜녀도 같이 와 있었다. 애들끼리도 친구라 하고 학부모 모임에도 두 여자가 매우 친하다고 한다. 이런! 이건 또 무슨 신의 조화인가?
아무래도 한 쪽을 정리하긴 해야겠다. 상상해봤다. 본처를 정리한다면 정식으로 이혼을 해야 하고 재산분할 같은 것도 해야 한다. 불륜녀를 정리한다고 생각하니 좀 더 불쌍한 마음은 들지만, 안 가고 연락 안하면 끝이다. 김부장은 독하게 마음 먹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 인연이란게 무우 자르듯 싹둑 자를 수 있는게 아니었다. 관계를 정리하겠노라 통보했더니, 이 여자가 그럼 그 동안의 사실을 본처에게 알리고 아이들에게도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럼, 이혼의 수순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졸지에 불륜남에 홀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도 잃게 되고.
그래서 김부장은 생각했다. 둘 중 하나를 죽여야겠다고. 죽이고 애만 데려다 키우면 된다. 김부장은 살인을 계획했다. 그러나 아직 누구를 죽일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원래 사랑하던 사람은 불륜녀였으나, 긴 결혼생활 끝에 껍데기만 남겨진 몸과 맘으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둘 중 무난한 쪽, 유리한 쪽을 선택해야 했다. 본처의 아버지는 지금 김부장이 다니는 회사의 직장 상사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다. 불륜녀는 부모님이 안 계신다. 당연히 불륜녀를 죽이는 것이 여러 모로 무난라고 유리했다. 그는 여느 날 처럼 그 여자의 집으로 갔다. 가슴에는 음료수에 탈 독약을 품은 채.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실 때 커피에 탈 생각이었다. 아니 그런데, 오늘따라 커피를 안 내오고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내 오는 것이 아닌가? 아~ 신이시여 정녕 제 아내를 죽여야 한단 말입니까?집으로 돌아온 김부장은 그날따라 와인을 따는 아내를 보며 죽을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김부장은 독약을 아내의 와인잔에 탔고 와인은 들이킨 아내는 그대로 즉사했다. 체내에서 즉시 분해되는 독극물이라 부검을 해도 증거가 남지 않고 그 외 타살의 흔적은 없었다. 정황은 김부장을 가리켜도 증거불충분으로 김부장은 풀려났다.
정상적인 순서라면 김부장은 그 불륜녀와 결혼을 하고 다시 가정을 꾸려야 정상이다. 그러나, 김부장은 결혼을 미루고 미뤘다. 아니, 하기 싫었다. 그만큼 결혼 생활에 지쳐있었던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감옥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 김부장은 자수를 했다. 그러나, 자수가 유일한 증거이므로 재판 결과에는 변동이 없었다. 김부장은 떠났다. 홀로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작은 어촌을 찾아 떠났다. 그리고는, 어촌의 작은 집에 자리를 잡고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둘때까지 오로지 혼자서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