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과 꽃 한 송이, 그리고 한 마리의 새

by 은쨩

가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거 같을 때. 아무도 날 위로해주지 않을 때.

나는 그런 날이 참 반갑다.


한국에서 살던 한국인인 나는 자기 계발이란 거에 미쳐있었다. 하루종일 자기 계발 서적을 읽고 사업 공부를 하고 그와 관련된 인스타그램으로 나를 알리기 위해 노동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나의 모든 일과를 이것에 바쳤다. 퇴사를 하고 베트남 다낭에서 한 달 살이를 할 때 휴식을 위해 자기 계발 서적이 아닌 소설책, 철학책을 주로 읽었다. 뉴질랜드 생활 초기엔 솔직히 이런 거에 관심 없었다. 다만 내 힘듦과 고통이 나를 완전히 누르고 있어서 책을 읽을 힘조차 없었달까? 그러다 데번포트에서 나무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내 또래의 여성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저 평온함이 나의 감정을 건드렸다.


아 모르겠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들고 1시간 정도 버스를 타서 오레와 해변(Orewa beach)이라는 바닷가로 갔다. 모래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한 큰 바윗돌에 앉아 책을 펼쳤다. 시원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 다양한 새소리, 천진한 아기 소리, 목이 뻐근해 잠깐 고개를 들면 보이는 푸른 하늘, 그리고 드넓고 푸르른 바다. 이게 내가 원하던 바가 아닌가!


KakaoTalk_20241123_061732195_05.jpg Orewa b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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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아파트보단 개인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어서 각 집마다 다양한 마당이 있다. 그 마당에는 조그마한 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꽃을 사랑하는 나로선 행운인 거다. 꽃 냄새를 맡다가 출처를 모르는 개똥에 얼굴을 대일 뻔했지만. 그 꽃들은 아주 조그마하다. 키가 174cm인 나에 비하면 그 꽃들은 내 손톱만 한 어쩌면 약한 존재다. 근데 그것을 보는 순간 난 그 꽃들이 나의 어깨를 잡고 토닥거려 주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 작은 존재가 어떻게 나를 토닥인다는 말인가. 그래서 난 순수한 걔네가 좋다.


혹시 너도 내가 좋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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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조류친화적인 나라이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에 마이너(Mynah), 블랙버드(Black bird), 푸케코(Pūkeko) 등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조류들도 볼 수 있다.


내가 살던 알바니(Albany)라는 오클랜드의 한 지역에는 푸케코라는 새가 아주 많이 살고 있다. 시티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약 20분을 걸어야 하는데 그곳을 걷는 동안 푸케코 가족들이 도로에 나와 나를 반겨줄 때도 있다. 처음엔 나의 종아리 높이만큼 올 정도로 새치곤 커서 무서웠다. 끼까악- 꾀꼬리처럼 새소리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앵무새처럼 화려한 것도 아니야. 어두운 새벽길을 걸을 때면 갑자기 나타나는 푸케코때문에 깜짝 놀란 적도 많다. 그런데 언젠간, 퇴근을 하고 눈물을 또르륵 흘리며 걷고 있을 때 만난 푸케코는 말 그대로. 그래. 내 마음이었다. 나를 마중 나오며 고생했다고, 오늘도 잘 버텨냈다고, 그래, 집에 가서 샤워를 하면서 그 힘든 마음 싹 씻어내자고, 그렇게 나에게 말하는 거 같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듣고 싶던 말이라 애꿎은 푸케코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상상하는 걸 수도 있다. 근데 그럼 뭐 어때. 내가 위로받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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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도 많다.
KakaoTalk_20241123_061732195_04.jpg 내 친구 푸케코

이 글의 첫 부분에서 나는 아무도 날 위로해주지 않을 때, 그런 날이 반갑다고 했다.


아니 사실 난 그런 날이 반갑지 않다. 그저 난 즐거운 마음으로 저것들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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