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쓰는 편지
요즘 어떻게 지내냐? 사업은 잘 되나?
늘 헤헤 웃는 네 생각이 많이 난다, 민지야.
우리 작년에 서울 여행 간 거 기억하나? 덕분에 서울이라는 도시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결국 나 혼자 서울로 가서 살게 되었지. 네가 아니었다면 난 아마 지금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지 않았을 거야. 계속 신세한탄만 하면서 끙끙대며 살았겠지. 서울에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거든. 그래서 너한테 참 고맙다. 참, 연애는 잘하고 있나? 한국에 있었다면 네 이야기를 들으러 바로 부산으로 갈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네가 마음 깊이 사랑할 수 있고 네 행복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남자를 만나면 좋겠다. 그렇게 결혼이라는 새 시작을 하게 된다면 네 옆에서 친구로서 너의 기쁜 들뜸을 들어줄게. 가끔은 한탄도 들어주겠지만 그런 일은 없도록 하자. 네가 아기를 가지게 된다면 난 누구보다 다정한 이모가 될 거다. 그리고 너에게 더 신경을 쓸 거야. 예를 들면... 네 생일에 꽃을 선물해 줄 거야.
삶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흘러간다고 하더라. 네가 살고 싶은 삶은 뭔지 궁금하다.
나는, 3m가 넘는 1그루의 야자수 나무 아래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디저트로 초콜릿 케이크, 그리고 Tom Misch의 'Movie'를 들으며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단순히 말하자면 아무 걱정 없이 여유를 온전히 즐기고 싶다는 말이다. 지금 내 삶은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다.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그러기엔 지친다. 거짓으로라도 나는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전혀 그럴 수 없다. 너에게 쓴 편지만 몇 장이다. 하지만 보낼 수 없었다는 걸 이해해 주라. 우울한 이야기만 가득해서 차마 보낼 수 없었다. 너는 해맑은 아이니까. 그걸 망칠 순 없거든.
요즘 인생은 어떠냐. 나이가 들수록 감정에 무덤덤해져야 할 거 같은데 어쩔 땐 주체하지 못하고 와르르 넘어질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인생이란 게 이런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난 항상 인생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살아왔다. 이게 내 인생의 미션이 아닌가 싶다. 네 인생의 미션은 뭘까.
부모님은 잘 계시는지 궁금하다.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니 제일 소중한 사람은 가족이더라. 언젠가 부모님이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되신다면 그 고통을 어찌 이겨낼지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힌다. 오늘이 내 어머니의 생신이라 더 생각이 나나보다. 우리 그렇게 힘든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면 서로 토닥이는 사이가 되자.
우리 깊은 삶을 살도록 하자. 너무 깊어서 행복에서 헤엄쳐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난 네 행복을 사랑하니, 꼭 그 행복을 간직하길 바란다. 우리 다시 만나게 되는 날에 그 행복에 대해 다시 살펴보자. 그리고 웃자.
보고 싶다.
2024.12.08.
뉴질랜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