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morning!
Thank you.
뉴질랜드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 2개의 문장이다.
버스 기사님과 직장 동료와 고객님과, 산책하다 만난 이웃과 혼자서 씩씩하게 등하교를 하는 꼬맹이들까지.
이곳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미소를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그 미소를 발견한 건 아니다.
그것을 인지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에서 첫 워킹 홀리데이를 시작했다.
Ken이라는 키위 (뉴질랜드 사람을 Kiwi라고 부른다)의 백인 할아버지의 에어비앤비에서 잠시 지냈다.
그의 집은 주택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 시티에 나갈 때면 마음을 먹고 외출해야 할 정도로 오르고 내려가는 게 쉽지 않았다.
웰링턴에서 일을 구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심지어 집을 구하는 것도... 그래서 몇 번이나 Ken의 에어비앤비를 연장했는지 모른다.
통장의 돈은 점점 없어져 가고, 이곳에서 눈치 보면서 지내는 것도 지쳐갔다.
게다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종차별까지 당하니 이거 뭐 뉴질랜드에서 고생하면서 살아야 하나? 이걸 감수해 낼 만큼의 가치가 있나? 란 생각을 하루에 수없이 하곤 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자존심이 세서 '내가 돈이 없이 가오가 없나'라는 마인드로 꾸역꾸역 버텨나갔다.
하루는 근처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갔다.
웰링턴의 관광명소이자 역사가 깊은 Wellington Cable Car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서 Wellington Botanic Garden을 통해 내려왔다.
오랜만에 속이 진정되는 느낌이랄까,
누군가 나를 위로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 다 이해한다고, 근데 지금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자고.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봤다.
나비, 꽃, 세 잎 클로버, 맨들한 돌까지.
근데 그중 제일 아름다운 건 사람이더이다.
벤치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던 마오리 청년, 두 아기를 안고 험난한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던 어머니,
한 손엔 지팡이를 한 속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걷던 백발의 노부부, 서로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나눠먹던 풋풋한 젊은 커플, 전부 아름답더이다.
웰링턴에서 오클랜드로 지역 이동을 하고 나서 감사하게도 드디어 일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시티에 있는 한 5성급 호텔의 프론트 데스크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한국이랑 아주 많이 달라서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직급에 상관없이 상사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고객들에게 손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 이게 인간 중심적인 환경인 것이다!
그러나 회사의 체계가 부족하고 고객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는 환경에 더 노출되어 있다는 건 많이 아쉽다. (일주일에 적어도 1번 이상은 경험하고 있다.)
뭐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미국의 뉴욕이랄까..? 수도가 아닌 다른 도시가 주요가 된다는 게 신기하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다들 신경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편인 거 같다.
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 춤추는 사람, 소리를 지르며 스쿠터를 타고 다니거나 비둘기 갈매기와 점심을 먹는 사람들.. (난 아직 글렀다)
자연을 놀이터 삼아 해맑게 뛰어다니는 아기들도 있고 바닷바람과 함께 책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뉴질랜드의 자연을 맘껏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서 배운 점은,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내 나라가 나에게 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최대한 누릴 거라는 거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편안한 미소로 인사를 해주는,
사람이 싫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어찌 그들을 미워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