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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키는 최고의 아침

소고기미역국, 소시지야채볶음

by 퉁퉁코딩

누군가를 위해 아침을 차린다는 건, 밤새 식어버린 공기를 다시 따뜻하게 만드는 일이다.

나는 그 의미를 갓 자취를 시작한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알았다.

그 시절 나는 같은 과 동기와 함께 살고 있었다.

기숙사 경쟁에서 떨어진 두 남학생이 월세를 반씩 내기 위해 급히 결성한, 지극히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공동체였다.

정사각형 공간에 작은 창문 하나, 벽지에는 약간의 곰팡이도 피어 있던 작은 원룸이었다.

거기에 두 사람의 짐이 들어오자 방은 금세 포화 상태가 됐다.

서로 동시에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산소가 모자랄 것 같은 공간이었다.

지금 같으면 공짜로 살라 해도 고개를 저을 곳이지만, 그땐 모든 게 괜찮았다.

그저 이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나가지 않아도 좋으니, 내일이 공강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20대 초반이었다.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레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주말이면 답답한 방을 박차고 나가 아침부터 당구장에 가서 점심 내기를 했고, 다음날 수업이 없을 땐 PC방에서 해가 뜰 때까지 마우스를 휘저었다.

가끔은 친구들이 몰려와 좁은 자취방을 술집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부어라 마셔라의 밤이 끝나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차가운 생수 한 컵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인생이 끝없이 길다고 믿었고, 새벽까지 깨어 있는 게 어른이 된 증거라 생각했다.

진짜 어른은 피곤에 절어 새벽까지 깨어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그 때는 몰랐다.



아무렇게나 흘러가던 시간 속에서 바로 그날이 찾아왔다.

동기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다.

우리 과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가장 먼저 군대에 간 또 다른 동기였다.

나와는 썩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같은 과라고 해도 친한 친구 무리가 달랐고, 수업 시간에도 강의실의 먼 자리에 앉아 있던 기억만 있었다.

어느 날, 같이 살던 동기가 말했다.

"걔가 첫 휴가 나온대. 하루 재워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

나는 괜찮다고 했고, 그렇게 셋이 만나기로 했다.

첫 휴가를 나와 학교 근처로 놀러온 그는 짧게 깎은 머리에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나타났다.

말투도 어딘가 딱딱해져 있었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그는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셋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단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가 약간의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했던 한마디였다.

“군대는 무조건 먼저 가는 게 최고야.”

하지만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몇 달 만에 마신 술 앞에서 대한민국 육군 일병은 금세 항복했다.
사격장에서는 강했을지 몰라도, 알코올 앞에서는 약했다.


결국 그는 만취 상태로 우리 자취방으로 끌려왔다.

좁은 방 안에 세 남자가 구겨져 누웠고, 알코올과 양말 냄새가 공존하는 밤을 보냈다.

다음 날,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우리를 깨웠다.

군대에서 매일 아침 여섯 시에 눈을 뜨던 습관이 남은 것이다.

"나 이제 집에 가볼게."

조용한 목소리의 그 말이 뭔가 이상하게 마음이 걸렸다.

"멀리서 왔는데 그냥 가긴 뭐하잖아. 아침이라도 먹고 가."

그때까지 이 방에서는 아침이란 걸 차려본적이 없는데 불쑥 그 말이 입에서 나왔다.

부엌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구석에 있던 버너를 꺼내 양은냄비에 라면을 끓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김치도, 계란도, 찬밥도 없었다.

그저 라면뿐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처음 차려본 아침이었다.

불침번을 설 때마다 먹었을 라면이지만, 그는 젓가락으로 면을 후루룩 집어 올리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라면 한 그릇을 나눠 먹은 짧은 아침 식사가 우리 사이의 묘한 거리감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몇 년이 더 흘러, 우리 셋은 모두 군 생활을 마치고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개강을 앞두고 한 잔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같이 자취를 했던 동기가 갑자기 오래전의 기억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얘가 첫 휴가 나와서 셋이 보자고 했을 때 좀 망설였대."

그 동기는 늘 나를 어려워했다고 했다.

나도 그때는 그저 서먹서먹한 사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는 나를 '결이 다른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뭔가 친해지기 어렵고... 좀 불편했대."

그러자 가장 먼저 군대에 갔던 동기가 말을 이었다.

"근데 그날 아침에 네가 라면 끓여주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그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생각보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점점 더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교외 프로젝트도 함께하고, 학회 논문을 발표하러 기차로 세 시간을 달려 먼 도시로 가기도 했다.

서로의 진로 계획에 조언을 해주며, 사회생활을 위한 준비를 함께 이어갔다.

이제는 모두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한 집의 남편으로서 각자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아침을 준비한다는 건 점심이나 저녁을 차리는 것과는 다르다.

아침은 함께 보낸 어제의 마무리일 수도, 혹은 함께 시작할 오늘의 출발이기도 하다.

때론 둘 모두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아침을 함께한다는 건 이미 특별한 관계임이 분명하다.

그 아침을 직접 차려준다면, 특별함은 더욱 따뜻해질 것이다.

밤의 식탁에 깃든 취기는 관계를 깊어지게 하고, 아침 밥상의 온기는 그 관계를 선명하게 만든다.



이제는 매일 아침을 함께할 누군가와 살고 있지만, 생각보다 아침을 차리는 일은 많지 않다.

우리 부부는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다.

둘 다 회사 식사 시간이 비교적 자유롭다 보니, 배가 고프면 이른 점심을 먹으면 그만이다.

출근 전 밥 한 끼보다는 단 10분이라도 더 자는 쪽을 선택하는 부부다.


주말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약간의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바로 점심시간에 첫 식사를 하는 게 더 익숙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금요일 저녁, 아내는 큰 계획을 발표했다.

그 계획을 실행하려면 이른 아침 집을 나서야 했다.

나는 그 말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 계획이면 아침이라도 든든히 먹고 가야지?"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까."

그리고 맞이한 토요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을 떴다.

하품을 몇 번 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아침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력했다.



아침은 첫 휴가를 나와 승자의 미소를 지었던 그 동기도 좋아했을 법한 식단이다.

미역국, 소시지야채볶음, 김치, 그리고 김.

어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구성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전역을 일주일 앞둔 병장이라도 숟가락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바로 그 전설의 식단이다.

먼저 소고기미역국부터 끓인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잘게 썬 소고기와 다진 마늘을 볶는다.

고기가 익어가며 고소한 향을 내기 시작할 때 간장을 살짝 둘러 밑간을 해준다.

그다음 불려둔 미역을 넣고 함께 볶아준다.

물은 세 번에 나누어 조금씩 부어 깊은 맛을 우려낸다.

국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국간장과 소금, 참치액으로 간을 맞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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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소시지야채볶음이다.

기름을 두른 팬에 칼집을 낸 소시지를 팬에 올린다.

소시지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기 시작하면 양파, 마늘, 당근,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함께 볶는다.

이제 양념 차례다.

케첩 한 숟갈로 새콤함을, 고추장으로 매콤함을, 간장으로 깊이를, 올리고당과 설탕으로 달콤함을 더한다.

굴소스 반 스푼까지 넣고 볶으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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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보내주신 김장김치와 아버지가 보내주신 김을 함께 내놓는다.

이렇게 해서 나라도 지킬 만한 최고의 아침상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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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차려두고 아내를 깨웠다.

"밥 먹어. 아침 준비 다 됐어."

전날 미리 내일은 군대식으로 아침 차려주겠다고 예고해둔 터라 아내는 반쯤 기대, 반쯤 의심이 섞인 얼굴로 식탁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상을 본 순간, 눈이 반짝였다.

"무슨 군대 아침이 이렇게 근사해?"

놀람보다 더 큰 신남이 담긴 목소리였다.


아내는 숟가락을 들자마자 밥, 미역국, 소시지를 번갈아가며 먹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더니 물었다.

"이거, 소시지야채볶음 더 있어?"

팬에 아직 남아 있다고 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리필을 해왔다.

배식 담당이라도 된 듯,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어때, 든든해? 오늘 계획 잘 지킬 수 있겠어?"

나는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아내는 대답 대신 숟가락을 들고 밥을 오물오물거리며 망설였다.

표정이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잠깐의 정적 끝에, 아내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 몰라... 일단 밥부터 먹을래."

그 말투가 묘했다.

작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말했다.

"이제 양치하고 나가야겠네."

그런데 아내는 곧바로 소파로 가더니 그대로 드러누웠다.

쿠션을 품고 담요를 덮는 속도가, 출근 준비할 때보다 훨씬 빨랐다.

"나 그냥 안 갈래. 오늘은 띵까띵까 집에서 쉴래. 히힛."


그 원대한 계획은, 일주일 동안 가지 못했던 요가에 꼭 가겠다는 거였다.

내가 정성껏 차린 아침은 아내의 띵까띵까 에너지 보충식이 되어버렸다.
결국, 게으름을 지킬 힘만 길러준 셈이었다.

아내는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을 기세였다.
나도 그냥 아내 옆에 앉아, 오늘은 같이 띵까띵까 하기로 했다.


아침을 함께 먹는다는 건, 역시 특별한 사이다.
함께 이 평화로운 주말의 나른함을 보내는 일이 괜히 좋았다.
나는 아내의 늘어지고 싶은 토요일, 그 일부가 되었다.


아내의 후기

소고기미역국
★5.0점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진한 미역국이었습니다.
신랑이 군대 이야기를 한번 시작하면 멈추질 않는데, 그만큼 이 미역국도 멈출 수 없이 맛있었어요.

소시지야채볶음
★4.9점
소시지가 부드럽고 야채와의 조화도 훌륭했습니다!
소스도 정말 맛있어서 리필까지 해서 한 접시 더 먹었어요.
신랑이 소시지 칼집 어땠냐고 묻길래 "예술이었어, 칼집 내느라 고생했지?"라고 답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칼집이 이미 나 있던 소시지를 구매한 거였습니다!
귀여운 거짓말에 0.1점 감점드립니다. 흐흐

총평
신랑이 말하길, 이 식단이 군대 최고의 아침 메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식사하는 내내, 나라를 지키는 군인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한때 군인이었던 신랑의 과거도 함께 상상하며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P.S.

사실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이 식단엔 뭔가 하나 빠져 있다.

혹시 모르겠다면 검색창에 '미역국 쏘야'라고 쳐보시라.
사진 속엔 늘 어김없이 우유 한 팩이 같이 있다.

그 우유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진정한 군대식 아침 풀코스가 완성된다.

상을 차리던 중 우유가 빠졌다는 게 떠올라 잠시 고민했다.
이 컨셉을 완성하기 위해 편의점으로 달려가야 하나.

하지만 불필요한 우유를 사 올 만큼, 컨셉에 매몰되지는 않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군대식의 혼은 살리되 우유 하나만큼은 생략한 적당히 유연한 민방위 대원으로 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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