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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나의 잠버릇 - 이갈이

문제 치아의 치료

by 김동석

저는 어렸을 때 한옥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고급 한옥이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지만 제가 살던 한옥은 그 당시 흔한 서민들의 집이었습니다. 처마 밑에 제비가 늘 집을 지었던 일과 지붕 위에는 도둑고양이가 밤새 뛰어다녔지요. 그중 가장 안 좋은 기억은 집 천장에 살고 있는 쥐들이었습니다. 밤만 되면 얼마나 시끄럽게 뭔가를 갈아대는지 잠을 잘 이루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 큰맘 먹고 천장을 뜯어내시기까지 했지만, 어디로 도망갔는지 흔적만 잔뜩 있고 쥐는 없었습니다. 밤이 되면 또 어김없이 소리가 들렸지요. 쥐의 이빨은 계속 자란답니다. 일 년에 10cm 이상 자란다고 하니까 뭔가를 계속 갈아야 하는 습성이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람의 치아는 자라지도 않는데 왜 이를 가는 사람이 많은 걸까요?


신혼부부가 이갈이 때문에 상담을 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이갈이를 하는 것은 여자 쪽이었고 신혼여행에서 뿌드득거리는 이갈이 소리에 너무 놀라서 ‘평생 이 소리를 들어야 하나?’하고 남자는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이갈이가 있는지조차 전혀 몰랐다고 했고 남자는 옆집에서도 들릴 정도로 소리가 큰데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다퉜답니다. 이갈이는 스트레스와 수면장애 등이 주요한 원인이기 때문에 결혼 준비 등으로 힘들었던 것이 원인이라면 안정을 취하고 기본적인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남편 분께는 ‘이갈이가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모르지만 본인은 정작 이갈이를 모릅니다. 드디어 옆에서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분이 생겨서 알게 된 것이니 잘 이해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남편분, 은근히 표정이 밝아지더라고요.

이갈이의 원인은 명확하지는 않고,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나타난다고 여겨집니다. 교합의 부조화, 정서적 스트레스, 수면 장애, 알코올과 약물의 영향, 유전적 소인, 중추신경계의 장애 등이 거론되며, 학습된 습관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연관이 많다고 언급되는 것은 스트레스와 수면장애입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는 이갈이의 원인 또는 이갈이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를 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더 많이 경험한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수면장애 이론은 잠자는 동안에 반복해 나타나는 저작근의 활성화가 깊은 수면 단계에서 낮은 수면 단계로 이동할 때 생기는 생리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갈이가 주로 렘(REM) 수면 초기나 비렘수면에서 렘수면으로 전환되는 시기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이지만 강한 힘이 문제입니다.


이갈이는 주위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할 뿐 아니라 자신의 수면의 질도 떨어져서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앞선 여성처럼 본인은 정작 이갈이가 있는 줄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갈이가 의심될 만한 증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증상이 있으면 밤에 이갈이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치아와 턱관절이 뻐근하고 아프다.

2. 치아가 많이 마모되었고 보철물이 자주 깨진다.

3. 찬 음식에 예민하고 치경부(치관(치아의 머리 부분)과 치근(치아의 뿌리 부분)의 경계)가 많이 파였다.

4. 교근(저작근 중의 하나)이 발달해서 사각턱이다.

5. 아무 이유 없이 얼굴이 아프고 뻣뻣한 느낌이 든다.



이갈이 치료 - 치과 진료실 엿보기


이갈이를 할 때 치아를 갈아내는 동작은 수평방향입니다. 그런데 이 방향이 치아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아주 좋지 않습니다. 보호성반사작용(딱딱한 것을 씹는 등의 치아에 해로운 힘이 가해질 경우 그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근신경계의 반응)이 낮은 수면 시에 일어나는 수평운동은 치아와 지지조직, 턱관절과 근육에 병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치아가 마모되거나 치수에 손상을 주는 것 말고도 치아나 틀니 등의 보철물이 부러지는 경우, 잇몸 조직의 손상, 치아의 흔들림, 측두하악(턱관절) 장애 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갈이 환자들이 턱관절 장애로 내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갈이는 턱관절 장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턱관절의 잡음, 턱관절과 저작근의 통증, 턱운동의 편위(턱이 움직일 때 좌우로 치우치는 경우), 입을 제대로 벌리지 못하거나 긴장성 두통이나 귀의 통증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갈이로 치아가 마모되는 것을 막아주는 스플린트, 혹은 턱관절을 안정화시켜 이갈이를 줄여주는 턱관절 안정장치 등은 치과에서 제작 가능하다.

이갈이의 치료법은 최근 다양하게 개발되었습니다. 일단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서 그 원인을 차단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갈이의 치료는 치과의사를 통해 진단을 받은 후에 운동요법, 약물치료, 구강 장치 요법(스플린트) 등 보존적인 치료를 먼저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갈이 장치는 코골이 장치와 더불어 치과에서 만드는 주요한 구강 내 장치입니다. 코골이 방지 장치도 치아에 장착해서 호흡하는데 필요한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보톨리늄 독소(보톡스)를 저작근에 주사하면 이갈이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서 기존의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경우 병행해서 치료하기도 합니다.

씹는 근육을 보톡스로 치료하면 이갈이를 줄여준다는 연구로 최근 심한 이갈이에는 보톡스 주사요법을 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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