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에는 캐나다 밴쿠버로 갔다.
당시에는 운동을 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대신 버스 잘못타서 집까지 걸어오기, 장본거 두 번에 나눠서 들고오기,
외국인 친구가 태워주겠다는데 무서워서 15분이면 갈 학교를 돌고돌아 1시간 넘게 가기 등으로
일상의 움직임이 아주아주 많아졌다.
그런데...
분명히 하루종일 움직였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살이 쪘다..
아니지, 사실 이상한 건 아니였다.
모든 것이 낯선 그곳에서 가장 익숙하고 편한 곳은 다름아닌 마트였다.
유난히 사람에게 친절한 그 곳은 어딜가나 늘 대화를 붙여오는 이가 있었다.
스벅에서도 단지 옆 테이블이라는 이유로 눈 인사를 하며 날씨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다.
엘레베이터에 혼자 타기 위해서 기둥 뒤에서 타이밍을 엿보곤 했었다.
내가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됐다는 걸 알면 그 친절한 사람들은 어린아이에게 하듯 아주 천천히 쉽게 말하며,
무엇이든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런 상황들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카트를 끌고 대형마트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은 말을 시키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제품에 써있는 글자들을 아주 천천히 이해하며 오래도록 읽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음식이란 것이 대충 그 모양과 포장지의 그림을 보면 충분히 상상이 가능한 범주 내에 있었기 때문에
한푼이라도 아껴야 했던 그 시절에 나름 실패 확률이 적은 소비였다.
그리고 외국의 다양한 식재료들이 선택의 폭이 정말로 넓었다.
지방 함량별로 나뉘어 있거나, 글루텐프리나 비건재료, 로컬푸드 등이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곳엔 정말 엄청난 숫자의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가격은 저렴했고, 포장용량은 컸다.
허기진 마음을 채우기 위해 음식들을 사다 날랐다. 그때만큼은 내가 이방인 같지 않았다.
가방엔 늘 스낵파우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낯설고 외로운 상황을 대면할 때마다 진정제 처럼 꺼내 먹었다.
그리고 그곳의 당떨어져서 까먹는 '초코렛 한 조각', 목말라서 마시는 '콜라 한잔'은
한국의 그것과 크기면에서 매우 달랐다.
급기야 한국에서 가져간 옷을 입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옷 쇼핑은.. 그 당시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불가피한 상황을 막아야만 했다.
밴쿠버에 온지 6개월만에 처음으로 헬스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은 마트처럼 정말정말 넓었고, 처음보는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큰 규모만은 아니였다.
그곳에서는 많은 여자들이 웨이트를 하고 있었다.
소위 3대 웨이트라 하는 스쿼트,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를 엄청난 무게로 치고(?) 있었다.
손에는 스트랩을 감아쥐고 복대를 차고, 바닥에 내려놓는 것만 봐도 가히 무게가 예상되는 중량을 후훅 하는 호흡과 함께 컨트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언니 소리가 절로 나왔다. 너무너무 멋있었다.
그동안 내가 원했던 갸냘프고 여리여리한 몸은 아니였지만,
탄력있는 힙과 허벅지와 잔근육이 갈라지는 팔뚝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언니들은 고등학교 시절 겨울에 교복 안에 입던 불투명한 학생용 검스인가 싶은..
딱 붙는 쫄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중에 그것이 소위 레깅스라는 사실을,
그리고 레깅스계의 에르메뗑, 룰루레몬의 고향이 바로 이곳 밴쿠버라는 것을 알았다!
헬스장을 등록하고, 집에 와서 구글링을 했다. 네이버 창을 켜놓고 한/영을 오가며 검색했다.
'스쿼트 하는 법, 스미스 머신 사용법, 와이드 스쿼트, 루마니안, 스티프 레그 등등' 나오는 연관 검색어를 따라가며 밤을 꼬박 새웠다. 내가 모르던 이런 놀라운 세계가 있다니!! 흥분상태로 졸린 줄도 몰랐다.
핵심정리 노트를 만들던 기술로 내가 막 알게 된 새로운 정보들을 내가 이해한대로 적었다.
글자로만 표현하기엔 뭔가 아쉬워서 그 옆에 인체와 근육의 모양들을 따라 그려넣었다.
그렇다. 그날 나의 워너비는 바람에 날라갈 듯 갸녀린 몸매에서
쫘~~악 달라붙는 레깅스가 어울리는 탄력있고 글래머러스한 몸매(특히, 힙)로 바뀌었던 것이다.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는 극단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체하는 날과 상체하는 날을 나누어서 스케줄을 짜고, 횟수와 셋트수를 계획했다.
복근은 회복력이 좋다고 하니 매일매일 해서 빨리 11자 복근을 갖고 싶었다.
헬스장을 하루라도 가지 않으면 불안했다. 운동하는 시간을 고려해서 수강신청을 했고, 약속을 잡았다.
시애틀이나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계획할 때도 호텔의 gym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먼저 체크했다.
근육이 커지려면 충분히 휴식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할 수 있다면 매일매일 해서 더 빨리 원하는 몸을 갖고 싶었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번씩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두번씩 헬스장 출근도장을 찍자,
트레이너나 나와 같은 시간에 헬스장에 자주 오는 사람들과 자연히 대화를 하게 되었고,
일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운동뿐 아니라 식이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단백질 신봉자가 되었다. 매일 같이 인바디기계 위에 올랐다.
움직임뿐만 아니라 식이에서도 극단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탄수화물을 죄악시 했다.
양질의 탄수화물을 적당히 먹어줘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왠지 탄수화물을 더 줄이고 단백질을 더 많이 먹으면 더 빨리 원하는 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밥대신 두부랑 계란 흰자를 먹기 시작했다. 초코맛 단백질 쉐이크를 보약처럼 흔들어 먹었다.
그리고 모든 물자가 풍부했던 그 곳은 단백질 파우더 및 각종 보충제 시장 또한 매우 컸다.
그러다 한번씩 자제력을 잃으면 폭식을 했다. 그것도 한 종류의 음식을 밀어넣었다.
비어드파파라는 주먹보다 큰 슈크림빵 스무개를 한 자리에서 먹었다. 프링글스 세통을 한자리에서 먹었다.
너무 괴로운데 멈출 수가 없었다. 속은 울렁거렸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호흡이 잘 안되었고, 끝내 화장실에 달려가 변기통을 붙잡았다. 정말로 울면서 먹었다.
그러고 나면 몸과 마음이 만싱창이가 되었다. 너무 괴로웠다.
다음날엔 더 열심히 헬스장에 갔다. 밀어넣은걸 태워야 했으므로..
내 몸에 들어온 음식물이 어떤 섬세한 경로를 지나면서,
생존과 활력에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고, 적절하게 대사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열량이 내몸안에 들어왔고 나는 그걸 태워서 없애야 했다.
근육의 상호작용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빵빵한 힙이 갖고 싶었으므로, 내가 원하는 부위의 근육을 고립시켜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달려들었다.
근육 안쪽에 천장관절과 고관절이 있음을 고려하지 않았고,
골반이 척추, 날개뼈와 갖는 연결성을 대둔근이 허리(코어)와 햄스트링과 갖는 상호작용을 무시했다.
체지방률은 25%에서 16% 그리고 11%로 순차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원했던 레깅스가 어울리는 힙?
종종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한거냐고 부러워하며 방법을 묻곤 했지만
요리조리 요상한 포즈를 따라하며 비춰보아도 거울 속에 나는 여전히 어딘가 부족해보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몸이 안아픈 날이 없었다. 너무너무 피곤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쳤다.
피곤했지만 잠을 잘 수 없는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3일에 한번꼴로 자는 패턴이 만들어졌다.
늘 부어있었고, 화가 나고 우울했다. 폭식과 좌절은 더 잦아졌다.
친구들은 '그렇게 맨날 운동한다는 애가 왜그래~'라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열심히일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매일 열심히 하는데 왜 건강하단 생각이 전혀 들지 않지?
왜 해도해도 부족한 것 같지?
나는 두려워서 식빵 한쪽 사과 한쪽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저기서 뺑오쇼콜라와 라떼를 먹는 저들은 왜 나보다 더 멋지고 행복해보이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2년 만에 깨달았다.
나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