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봄밤 냄새가 나길래 달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글을 읽고 쓰지 않으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몇 달간 거의 읽고 쓰지 않았다. 절기의 흐름에 무력한 탓에 겨울이 오면 죽은 사람처럼 아무 의욕 없이 봄만 기다리며 산다. 겨울에 태어나놓고 겨울마다 죽은 체한다는 것이 의아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기온이 오르기 무섭게 기지개를 켜게 된다.
한 해의 시작은 삼월부터라는 말이 있다. 일월의 시린 추위와 이월의 애매한 온기로는 해를 맞이할 힘이 통 나지 않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이 개학과 개강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삼월이라 그런가, 아니면 비로소 민족의 해방을 알렸던 국경일이 마침 삼월 초일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삼월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올해는 더 성장하고 말 것'이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죽은 채 보내버린 두 달간의 시간을 정당화하려는 심보다.
어느 정도 힘을 주고 살아야 하는지 누가 정해주면 좋겠다. 명상하고 요가 수련을 하고 차를 내려 마시는 동안에는 현실과 분리되어 이런저런 사색을 하는데,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 평생 함께할 수 있을까 두려울 지경이다가도 문득 내가 이런 여유를 즐겨도 되는가 싶다. 게으름과 평온함의 기준이 스스로 정립되지 않은 탓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편안히 쉬지도 그렇다고 어떤 일에 진하게 몰입하며 살고 있지도 않다. 매 순간 강물은 흐르고 있다는데, 내 흐름은 한동안 정체된 것 같다.
그래도 방금은 짧게나마 한 달의 일정을 정리해 보았고, 하루 동안 자잘한 목표들을 이루며 지내보리라 다짐도 했다. 이제는 누군가 뱉은 아무 말에 그리 동요하지 않는 내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그리고 봄비 내리는 지금 창문을 열어두고 글을 쓸 수 있음이 좋다.
봄을 힘껏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