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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May 17. 2022

그들은 왜 그랬을까, 조선과 일본의 역사 조작 (2부)

보통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쟁에 이겨 새 왕조가 들어서면 패배한 자들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여러 가지를 왜곡하기 마련이다.      

    

우리 역사의 시대 구분을 보자. 삼국시대(또는 가야까지 포함한 4국 시대)를 지나고 나서 신라·발해의 2국 시대가 있었고, 그 후 고려가 918년부터 1392년까지, 조선이 1392년부터 1910년까지(그중 1897~1910년 대한제국) 있었다. 그런데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것은 실상이 어떤지 몰라도, 외형으로는 평화롭게 이루어진 왕조 교체였다.        


고려의 서북쪽 국경은 압록강(鴨綠江)인가 압록강(鴨淥江)인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역사에는 두 개의 압록강이 등장한다. 우리말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른 압록강(鴨綠江)과 압록강(鴨淥江)이다. 가운데 한자가 다르다. (두 번째 압록강은 현재의 요하(遼河)를 말한다.) 


강단사학자(역사를 전공하고 주로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고려 때 북쪽 국경이 압록강 부근에서 원산 부근을 이은 선이고 그 남쪽에 천리장성(千里長城)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비(非) 강단사학(강단사학자가 아닌 사람)에서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로는 이건 비(非) 강단사학 쪽이 맞는 것 같다.          


고려 국경은 압록강(鴨綠江, ‘초록색 록’)이다 강단사학         


강단사학처럼 고려의 서북 국경이 지금껏 우리에게 익숙한 압록강(鴨綠江)이라 하면 다음처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인터넷과 유튜브 등을 보고 나서 내가 추정한 것이다).             


1. 천리장성(千里長城)이 설치되었다는 지역은 너무 험준해서 성을 쌓을 수 없다(험준해서 성을 쌓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거기에 성을 쌓은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2. 강동 6주의 위치다. 강동 6주는 강의 동쪽에 있어야 강동(江東)인데 지금 교과서대로라면 이는 강남(江南)이 되어버린다. 강동6주는 고려 성종 13년(994년)에 서희가 거란(요)과 외교로 차지한 6개 행정지역이다.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내세워 적장 소손녕을 설득시켰다고 한다. 그 위치는?           


3.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요동(遼東)과 철령(鐵嶺)이 등장하는데, 지금 국사교과서처럼 강원도 원산 부근에 있다는 철령(鐵嶺)이라면, 여러 가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명나라가 원래 원나라 땅이니 이곳을 머나먼 요동에 귀속시킨다(?).  건국 초기인 명나라가 한반도 동쪽 지역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왜 북쪽으로 군사를 몰고 가지(?) 등등.          


고려 국경은 압록강(鴨淥江, ‘맑은 물 록’)이다 (강단사학         


그런데 위 1~3을 ‘맑은 물’ 압록강(鴨淥江), 현재의 요하에 적용해 보면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다.       


1. ‘초록색’ 압록강(鴨綠江)에서 700여 리 서북에 있는 ‘맑은 물’ 압록강(鴨淥江)은 여러 지류가 하나로 합해지고, 강 유역이 광대한 곳이다.(그곳이라면 대군이 주둔할 수 있겠다.)          


2. 압록강(鴨淥江) 남동쪽에다 강의 흐름에 맞추어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쌓을 수 있고(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천리장성 아래쪽이 방위상 동쪽(이것이 江東)이니 강동6주가 성립한다.         


3. 그때부터 있던 철령(鐵嶺)이 지금도 철령시 등으로 그 지역에 있다. (철령위의 위치는 자주 바뀌었다고 한다). 한편 원산에 있다는 철령에 대해 나는 일제가 3만 6천여 개의 우리말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꿀 때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조선총독부의 조작 역사를 이어받은 현행 국사교과서를 그대로 두면           


조선총독부는 1920년 「조선총독부 교육지침」을 만들어 고려 국경에 대한 기술을 조작했다. 우리는 1945년 광복 후 만든 국사교과서에 이걸 그대로 옮겨놓고 현재에 이른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하면서부터 우리 교과서의 주장(압록강에서 원산만)을 받아들여 자기들 주장을 바꿨다고 한다. 그렇다면 2002년경부터 중국이 시작한 ‘동북공정’의 역사왜곡문제는 그렇게 하도록 우리가 방조한 격이 아닌가.           


중국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스스로(또는 일제가 조작한 것을 옳다고 믿고?), 고려의 북쪽 국경이 한반도 안에 있었고, 방위상 절대 강동(江東)이 될 수 없는 지역에 강동6주가 있었다고 하며, 성을 쌓을 수 없는 지역에 천리장성(千里長城)이 있다고 주장하니, 중국이 볼 때는 정말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 된 것이다.          


중국은 이를 기화로 다음 주장을 할 것이다.          


1. 자기들은 만리장성(萬里長城)의 동쪽 끝을 산해관(山海關)으로 알고 있었는데(전에 있던 모든 지도가 그렇다), 한국에서 고려 때 천리장성(千里長城)이 한반도 안에 있었다고 하니(그 북쪽이 중국 땅이니까) 만리장성을 거기까지 연결할 수밖에 없다.          


2. 북한 급변사태 등의 경우에 고려 때부터 한반도에 있었다는 국경 이북은 원래 자기네 땅이니 이를 분할받겠다고 주장한다면, 미국 등 국제사회도 그 주장이 맞다고 하지 않을까.         


국사교과서의 고려 국경부터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 고려의 서북 국경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에서 일제의 반도사관, 식민사관이 출발한다. 우리가 이를 고치지 않고 중국에게만 동북공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게 더 우습지 않은가.           


고려의 국경 문제부터 고치자!      (3부에서 계속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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