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서경(西京)이 어디지?
국사책을 펼치면 늘 느끼던 의문이다. 나는 고려(918~1392)의 수도가 개경(지금의 개성)이고 서경은 지금의 평양이라고 배웠다. 한자로는 開京, 西京이라고 쓴다. 그런데 서경이 있으니 동쪽에는 수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개경이라고, 동경이 아니고. 개경의 북쪽에 있는데 이곳을 왜 북경(北京)이 아니라 서경이라고 부르지? 이상하지 않은가 (중국의 북경(베이징)은 1403년 명 왕조에 이르러 생긴 지명이다).
고려는 개경과 서경의 양경(兩京)제 또는 4경제를 했다고 한다. 4경제에서는 한성(지금의 서울)을 남경(南京), 신라의 경주를 동경(東京)으로 불렀다. 한성(서울)은 개경의 남쪽에 있어 그랬는지 남경이라 불렀는데 북쪽에 있는 평양은 북경이 아니라 서경이라고 불렀지? 이상하지 않은가.
아이에게 한번 물어보자. 개성(개경)의 북쪽에 평양이란 지역이 있다. 서경(西京)이라 부를까 북경(北京)이라 부를까. 동서남북을 아는 아이라면 당연히 북경이라고 하지 않겠나. 간단히 지도를 그려본다.
현재 우리 국사책의 지도다. 개성의 북쪽에 평양이 있는데 그 명칭이 서경이다(?) . 남쪽에 있는 서울(한성)은 남경이지만.
서경(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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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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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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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경주)
한번 생각해 보자. 나라의 강역에 북경이 없는 나라는 아마 좌우가 길고 위아래는 짧은 형태일 것이다. 지도를 그려 보면 다음 세 가지 정도가 예상된다. 1. 동경과 서경이 있는 양경제 2. 중앙에 수도(개경)가 있고 동경, 서경, 남경이 있는 4경제 3. 중간 형태로 동경, 서경, 남경이 있는데, 동경이 제1수도이고, 서경과 남경이 있는 경우다. 이중 세 가지의 어느것도 우리 국사책과는 맞지 않는다. 나는 이 부분에는 분명히 역사조작이 있다고 본다. 상식에 어긋나는 지명은 바로 조작된 역사 그 자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1. 동경과 서경의 양경제
서경 ━ ━ ━ 동경
2. 개경이 제1수도인 4경제
서경 ━ 개경 ━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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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
3. 제1수도가 없는 3경제
서경 ━ ━ ━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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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
관련된 자료를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이덕일의 한국통사』(다산초당, 2019)에서 이러한 주장을 발견했다. 나와 이 부분에서 생각이 같다.
“태조 왕건은 즉위한 해 9월 “평양 고도(平壤古都)가 황폐한 지 오래되었어도 그 터전은 여전히 남아 있다”라면서 고구려 재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자치통감』 271권에는 왕건이 즉위해 개주(開州)로 동경을 삼고 평양으로 서경(西京)을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수당(隨唐)은 동쪽의 낙양을 동경, 서쪽인 장안을 서경으로 삼아 양경(兩京)제를 운영했다. 그런데 지금의 개경이 동경이라면 지금의 평양은 방위상 북경이어야지 서경이 될 수 없다.” (위 책 228쪽에서)
위에서 본 첫 번째 유형으로, 동경과 서경의 2경제인데, 남북으로 위치한 개성과 평양이 개경과 북경이 아니라, 개경과 서경이라는 지명으로 짝을 이루어 상식에 어긋난다. 이 분야에 역사조작이 있었다.
고려 왕건의 <훈요십조>와 단재의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918년 6월 15일(음력) 왕건은 국호를 ‘고려’, 연호를 ‘천수’라고 정했고, 즉위 다음 날 ‘짐이 여러 신하들의 추대에 의해 천자의 지위에 올라’라는 조서를 내렸다.---황제의 자칭인 ‘짐’이나 ‘조서’를 사용한 것은 그가 황제국을 지향했음을 말해준다(위 책 226쪽에서).
왕건은 고려가 고구려를 이은 나라이며, 고구려 제국을 재건하려는 강력한 의지를「훈요십조(訓要十條)」에 담았다. 여기의 4번째 항목이 바로 ‘서경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고려의 서경이 현재의 평양이라면 그가 계승하려는 고구려가 넓은 대륙의 나라가 아니라는 오해를 불러온다. 이게 바로 반도사관의 출발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고려의 서경은 절대 현재의 평양이 될 수 없다.
단재 신채호가「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고 한 것은 고려 인종(1132) 때 묘청의 수도이전(개경에서 서경으로) 추진에 관한 일이었다. 그때 묘청은 우리 강역이던 서경(현재의 요하 부근)으로 수도를 옮기고 황제국을 선포하자는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주장했다.
이때 정지상은 ‘천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때’라면서 ‘위로는 천심에 응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바람에 따라 금나라를 누르소서’라고 주청했다(위 책 248쪽)고 한다.
이 두 사건만 보더라도 고려의 서경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대륙에 있던 평양이 분명하다.(북한은 평양에 단군릉을 조성하는 등으로 역사를 조작해 놓았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평양은 여러 시대, 여러 곳에 있었다.)
내가 보기로는 개경(開京)도 현재의 개성이 아닌 것 같다. 앞서 본『자치통감』에 나오는 개주(開州)의 개(開) 자를 따서 이곳의 지명과 역사를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이다. 나는 고려의 서경은 2개의 압록강 중 압록강(鴨綠江, 초록색 록)이 아니라 서북쪽에 있는 압록강(鴨淥江, 맑은 물, 록) 부근에 있었다고 본다. 그때의 역사적 사건이 이래야만 제대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 땅이름을 몽땅 바꿨다(창지개명, 創地改名)
나는 어릴 적에 일제가 우리 지명을 마구잡이로 고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고향(청주)에서 원래 여기는 ‘대머리’, 여기는 ‘쑥골’이라고 하는 등 옛 이름이 있었는데 나중에 이걸 모두 잃어(잊어)버리고, 일제가 새로 만든 지명을 쓴다고 들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다. TVN에 보도되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대로 옮겨 적는다.
“1910년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고유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이른바 창지개명(創地改名)이 추진된다. 식민지 통치를 위해서는 행정구역의 재편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계획적인 지명 바꾸기를 서둘러 실시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행정구역 폐합 정리라는 명분으로 조선의 군 97개, 면 1천834개, 리 동 3만 4천233개의 우리말 이름이 사라지거나 바뀐 것으로 확인된다.”
지명 변경에서 두 개의 내가 아우러진다는 ‘아우내’를 병천(竝川)으로, ‘두물머리’를 양수리(兩水里)로 한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담당자가 제멋대로(?) 지었다고 한다.(그들은 창씨개명도 제멋대로 해버렸다)
고려, 조선의 국경 회복과 더불어 ‘땅이름 바로 찾기’부터
여기서 더 기막힌 이야기를 하려 한다.
서울지역 지명마저 30% 이상이 일제가 잘못 붙인 지명이라는 기사가 있었다(한겨레, 2017년 8월 14일 자) 이걸 읽어보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대체 그동안 무얼 한 건지 화가 났다. 서울에서 지명 왜곡이 가장 심각한 곳은 예부터 사람이 많이 살았고 지명도 많았던 4대문 안이라고 한다. 일제가 창씨개명(創氏改名)에다 창지개명(創地改名)까지 했는데---
우리는 광복 후 77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제대로 일제 청산을 하지 않았다. 자기 사는 고장의 예전 이름도 잃었고(잊었고) 아직도 일제가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지명을 쓰고 있다. 원래 이름을 찾아내어 바꾸는 것, 이게 진짜 <역사 바로 세우기>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예전에 이걸 계획한 일본인이 지하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얼마나 비웃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4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