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20대, 30대 나이를 먹으며 사라지지 않는 고민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적정에 맞을까?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하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10대의 나는 20대가 되면 진로 고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20대의 나는 30대가 되면 직장도 가지고 더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공부하고 일하며, 하루 24시간이란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럼 40대가 되면 괜찮아질까?
난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지만 좁아터진 제약 업계에선 어느 정도 인정받는 회사이다. 여기서 거의 대부분이 모를, 아니 한 번쯤 들어봤을 수도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의약품을 개발하고 허가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임상과 허가 업무를 맡고 있다. 정확한 직무의 이름은 CRA (Clinical Research Associate), RA (Regulatory Affair)라고 불리고 팀 명은 임상팀, 인허가팀으로 불린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고는 싶지만 너무나 재미가 없는 이야기일 뿐이니까, 우리들의 친구 네이버에 검색하면 굉장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한 번 검색해 보길 바란다.
그래도 간단히 이 일의 특징을 말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나는 회사에 출근하고 단 한순간도 컴퓨터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오직 컴퓨터 또는 핸드폰과 함께 구글로 세계에 퍼져있는 정보를 검색하고, 검색한 모든 것들을 활용하여 문서를 작성한다. 때로는 통계를 돌리는 일까지도 한다. 그렇게에 옆에서 열심히 실험하고 이곳저곳 뛰어다는 다른 부서의 눈에 보기엔 정말 편하게 일한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또, 회사에서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 그리고 정형화되어 이루어지는 일은 없는 곳이다. 모든 과제, 업무에 정답은 없고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쳐 팀원과 팀장님과 논의하고 의견을 구하며 해결해야 하는 일 투성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나는 내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더 나아가 식약처를 설득해야 한다. 그렇기에 아주 많고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고 그만큼 고통도 수반된다.
난 밖으로 돌아다니길 좋아한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곤 의자에 앉아서 모니터만 주구장창 바라보는 일이지만 사실 나는 밖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여느 때와 같이 산책한다는 명목하에 회사 밖을 맴돈다. 잠시나마 쬐는 뜨거운 태양이 모니터로 인해 눈에 쌓인 피로를 풀어준다. 퇴근하고 나면 집에 있기보단 가볍게 산책을 나가고, 한강으로 자전거를 타러 가고, 요가를 하러 간다. 주말만 되면 밖으로 나가 공원으로 산책을 가고, 친구를 만나 술 한 잔 기울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집에 있는 시간은 나를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깊은 바다 밑으로 나를 끌어내리기에 유쾌하지 않다.
또, 일을 하며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움을 느낀다. 정해진 계획에 맞추어 해야할 일을 정확히 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메일 한 통, 전화 한 통으로 일의 방향이 시시각각 바뀌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많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이 일이 잘 맞을까? 지금의 나는 고민에 빠져 있다. 내가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나의 얕은 지식과 경험과 노력으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이렇게 나와 맞지 않는 면이 존재하는 걸 알면서도 평생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한데 모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모두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앞의 회차에서 본 것처럼 제약회사에 들어오기까지 화학, 디자인, 미술, 제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해 탐구했다. 이렇게 많은 경험들은 때로 마치 가시밭 길을 걷는 것처럼 나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새롭고 신기한 길을 열어주어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난 새로운 일을 탐구하고 연구한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하고, 나만의 사업을 구상하고 계획하고 실현하고 싶고, 사이드프로젝트에서 마케터와 디자이너로써 일을 해보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나는 하나씩 하나씩 나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떠 다니는 여러 이상적인 생각을 현실로 만들고자 한다.
모든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쓰는 글조차 나에게 맞는 일인지 확신이 없다.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끝없는 고민과 걱정이 가득한 어둠 속을,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터널 속을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런 시간이 꽤나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저 하고 싶었고 해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