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그 식상함

by 뭉클



큐레이션(Curation)은 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미술 작품이나 예술 작품의 수집과 보존, 전시하는 일을 지칭하였으나 최근 다양한 곳에서 큐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북큐레이션이라는 개념도 큐레이션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그 뜻을 알든 모르든 어느 정도 정형화된 느낌을 받게 된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개념은 갑자기 삶에 침투해 우리의 생활 방식과 사고, 관점을 통째로 바꾸어놓지만 놀라운 속도로 진부해진다.


내가 전주 근교에 위치한 플리커 책방을 방문하게 된 이유가 꼭 큐레이션 때문만은 아니지만 큐레이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플리커 책방은 소양고택, 두베카페와 함께 선물세트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플리커 책방은 네이버 예약으로만 운영되었고, 도착해서 두베카페에 전화하니 직원이 내려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리뷰에는 예약하고 왔지만 문이 잠겨있고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아서 그냥 갔다는 글도 가끔 눈에 띄었다.) 오후 시간은 1시와 3시에만 예약할 수 있어서 나는 1시에 방문하게 되었다.



책방이란 호불호가 있는 법이므로 방문하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내가 느낀 플리커 책방의 개성은 '사적인 공간과 시간'에 있었다. 입구에는 불투명한 하얀 종이에 포장된 비밀책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은근한 음악과 함께 물소리가 잔잔히 들리는 단출한 공간이 펼쳐졌다.


북토크를 진행한 책들이 따로 모여있고 20% 할인하는 책들도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책을 선별하고 전시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독자가 누구인지, 읽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계절, 생애주기, 라이프 스타일 제안 등을 고려하게 될 때도 있다. 주제가 정해지면 도서관식 분류보다는 장르를 넘나들며 책을 고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읽으려고 집어들 때마다 손에 먼지가 묻었고 고심하다 사고 싶은 책을 골랐는데 새 책이 없었다. 소양 고택의 숙박과 두베 카페가 중심으로 돌아가고 플리커 책방은 예산으로 간간이 운영되는 수준인 것일까? 역시 책방만 보려고 찾아오는 나 같은 손님은 흔치 않은 것일까? 독립서점이라고 했지만 독립서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큐레이션은 공간을 기획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 꽃은 흐드러지게 피지 않았지만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였다. 꽃이 활짝 핀 날, 초록이 짙은 날 찾아오면 플리커는 더 아름다울 것이다. 차분한 음악과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공간에 앉아 책을 읽는 경험은 창가에서 느껴지는 계절감과 합쳐져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독립서점을 응원하고 일전에 들렀던 소양 아원 고택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어 찾아갔는데 조금 실망스러웠다. 두베 카페의 커피와 케이크는 터무니없이 비쌌다. 이곳에 온다면 소양 고택과 두베 카페 그리고 플리커 책방을 고스란히 느껴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오면 좋겠다. 계절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기에 말이다.


북큐레이션은 책을 전시하는 일이자 공간을 기획하는 일을 넘어서야 하는 진부하고도 낯선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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