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전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 짝꿍
애초에 이 연재를 시작한 건 짝꿍 덕분이었다. 가끔 주말 아침 일찍 눈이 떠진 날은 혼자 나가 뛰기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흥이 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함께 달리기는 분명 마력이 있다.
혼자 뛰는 걸 자유롭다고 느끼는 날이 있을 수 있다. 뛰고 싶은 페이스대로 천천히 뛰겠다고. 그게 좋은 날도 있다. 하지만 잠이 쏟아져 도저히 뛰지 못할 것 같은 날에 같이 루틴을 지키겠다고 일단 걸어 나오면 이상하리만치 괜찮아졌다. 뛰다 보면 같이 뛰는 짝꿍에게 더없이 고맙다. 함께하는 숨소리, 힘내라며 내어주는 손, 힘들어도 참고 뛰는 나를 위해 최고라는 응원과 제스처까지.
"덕분에 뛰네, 오늘도."
"나도 자기 덕분에 뛰는 거지."
둘 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각자 마음을 다지면서 뛰는 동안 괜찮아지는 걸 느낀다. 어떤 날은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이 별밤 아래서 쏟아지기도 하고 달리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덤덤해지기도 한다.
"자기 오늘 진짜 고생했네."
"우리 각시가 고생했지."
몸과 마음이 강해지면
나는 누군가의 '덕'이 될 수 있다.
말도 마음도 더 내어줄 수 있다.
거추장스러운 허물을 벗을 수 있다.
뛰면서 흔들리던 멘털을 좀 다잡고 나니
내 삶에 너무 큰 좌절은 자주 들이지 말아야겠다고 느낀다.
되도록이면 밝은 쪽으로
상황이나 관계를 무조건 좋게만 보는 낙관으로 일관하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명암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다.
나이 든다는 게 좋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세월의 힘을 믿고 싶다. 세월의 힘을 짓고 싶다. 얼마나 방황하며 돌아 돌아 제자리를 찾든 상관없다. 그런 건 딱히 실패도 아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각자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얼마가 걸려도 상관없다.
속도보다 방향이다.
내게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이런 의미다.
(지금 떠오르는 건 이 정도지만 점차 증식하고 있다. 각자의 정의가 필요하다. 글쓰기가 그 작업을 돕는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까?)
1. 자신의 역량(한계)을 파악할 것
불필요한 경쟁으로 불안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는 건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 몫이 있을 것이라 믿고 딱 그만큼에서 시작하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면 오히려 상대를 포용하게 되고 그런 모습에서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빨리 깨달을수록 더 오래 행복할 수 있다. 선의로 한 일도 억울한 대접을 받게 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앞의 생에 대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통제에 집착하거나 분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인간 자체의 능력에 대한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2.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쓰기
길티 플레저는 길티(Guilty·죄책감이 드는)와 플레저(Pleasure·즐거움)를 합성한 신조어이며, 어떤 일을 할 때 죄책감·죄의식을 느끼지만, 또 동시에 엄청난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를 말한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금욕적인 생활에 대한 압박이 줄었다. 방탕하게 살게 되었다기보다는 내가 즐기는 쾌락(먹고, 마시고, 듣고, 쉬고, 즐기는 모든 것)에 대해 책임감이 생겼달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쓸 수 있게 되면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지 않아도 되었다.
3. 특정 역할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려는 욕심은 나를 사랑하는 일에 장애물이 된다. 잔소리하지 않는 아내, 좋은 딸, 착한 동생, 멋진 교사 등등... 내가 나를 정의하는 방식이 온통 역할뿐이라고 느끼면서 내 굴레를 인식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과도한 자의식은 위험하지만 자기 인식은 해방감을 준다. 어떤 인식은 그 자체가 문제 해결이다.
의지로 시작하고 응원으로 유지되는 러닝이지만 어쨌든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건 나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이다. 초반에는 제법 몸이 가볍고 경치도 즐길 수 있지만 막판 스퍼트 구간에선 엄청 힘든데, 그 이상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눈 질끈 감고 버텨낸 시간은 내게 든든한 힘이 된다. 혼자 달려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응원으로 자라왔는지, 달려왔는지. 절대 안 될 줄 알았는데, 된다는 걸 달리면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