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라는 시

시달리는 삶에서 진짜 나를 찾는 법

by 뭉클


나는 익숙한 풍경에다 모니터를 걸었습니다. 모니터는 작고 오래되었지만 자신의 기능을 아는 듯합니다. 게다가 나이도 들었으니 최고로 성공한 모니터입니다. 그러나 최신도 아닌 기기는 우리 집에 필요 없는데! 나는 지나다가 붙잡혀 온 고물에게 그 자신의 역사를 가르쳐줄 시간과 공간이 없을뿐더러 일을 하러 가야 합니다.

- 시집 《별세계》 중 <낯설게 하기> by 김유림 -




달리기와 시는 서로 닮았다.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 말고도.



첫째, 달리기와 시는 시작이자 끝이다.

달리기는 많은 스포츠의 기본 훈련이다. 퍼포먼스 향상을 위해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이고 심폐 지구력이 필요하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요즘 시 워크숍에서 시를 쓰며 '시인은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를 생각하게 되면서 삶이 온통 자기만의 은유 도서관임을 깨닫게 되었다. 시야말로 문학과 비문학을 막론한 많은 글의 원형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달리기와 시는 삶의 기저에서 복잡한 삶을 하나씩 풀어내도록 돕는다. 달리기는 진짜 나를 찾는 은근한 여정이고, 시는 기존의 틀을 깨려는 격렬한 훈련이다.



둘째, 달리기와 시는 '달리 보기'다.

달리기는 유쾌하고 자유롭다. 나를 흔든다. 나를 깨부순다.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 알을 깨고 나오는 느낌. 달리기 대신 시로 바꿔 읽어도 말이 된다.

달리고 낭독하고 쓰면 우리의 삶은 최소한의 의식주와, 머 코드가 비슷한 대화 친구만 있어도 충분하다 믿게 된다. 밥벌이의 고단함으로 종종 눈 멀지만 짝꿍과 함께 숨이 턱까지 차게 뛰고 나면 다 괜찮아지는 것처럼, 한 MZ시인의 시 문형에 맞춰 나만의 시를 쓰고 나면 선 나를 견하는 해방감에 도취된다.


달리기도 시도 하나의 놀이다. 나는 운동을 하다 놀고, 놀다 연습하고, 울다 웃는다. 내 꿈은 오직 내가 되는 것. 매일 리셋되는 꿈일지라도 모든 아침에 꾸는 꿈. 언제나 함께 달리는 짝꿍이 있고, 시를 쓰다 나를 들켜도 부끄럽지 않은 시 친구들이 있다.


셋째, 달리기와 시는 내 몸이 반응하는 감각을 키운다. 운동 신경은커녕 몸의 소리에 지독하게 무딘 내게 이 반응성이란 실로 놀라운 파동이다. 관점이 힘을 얻으려면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스스로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창작자로서 뾰족한 내가 되고 싶다면 소재 수집과 연상 작업에서 그치지 않고 끈기 있게 자문해야 한다.

달리기와 시는 끈적하게 내 몸에 붙어있는 아집과 방어기제를 녹인다. 새로워지려다 다시 관성에 주저앉는 내게 말을 건다. '못 들은 척하지 마. 너도 다 알고 있잖아. 네가 뭘 원하는지.'


시달리는 삶이지만 시로 힘내서 달려보는 밤들을 기억한다. 누구에게도 이 둘의 짜릿한 조우에 관해 털어놓은 적이 없지만 감 요술램프, 수면제, 도파민 부스터 등 그 효용이 끝이 없으니 나는 좋아하는 것을 좀 더 본격적으로 좋아해 볼 요량이다.







*인용 출처: 《달리기와 존재하기》 by 조지 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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