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만난 사이에는 각별함이 있다

만남 그리고 이별

by 이수아

힘든 마음이 오래 이어질 때가 있다.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힘듦이다. 마음고생을 하느니 몸 고생을 하는 게 더 낫다, 하는 말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실감하게 된다. 몸이 힘들면 쉬면 되는데 마음이 힘들면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떠한 걸로도 위로되지 않을 땐 슬픔에 잠겨 아픈 시간 속에 머물곤 한다. 그 시간이 오래 이어지면 심적으로 지치게 된다. 그럼 지친 마음에 쉼표를 찍고 싶어 진다. 주위에서 명상을 권하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을 찾다가 기분이 좋아지는 일 몇 가지를 떠올렸다. 욕조에 가득 물을 채우고 거품을 풀어 몸을 담그거나 귀걸이나 옷을 사는 일 그리고 글쓰기와 책을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며칠 동안 대인 관계로 힘들어하다 지친 마음이 그대로여서 아이를 등교시키고 반신욕을 했다. 책을 읽고 짧은 글도 한 편 썼다. 내가 좋아하는 곳인 집 근처 나무가 우거진 아시아나 CC 길도 다녀왔다. 웬만하면 이 정도에서 나아지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힘듦의 무게가 무거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쇼핑이었다.


언젠가 한 번 가보았던 수원역 지하상가에 있는 옷가게로 갔다.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흑색 청치마를 골랐다.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건 옷가게 주인아주머니 덕분이었다. 그녀는 눈썰미가 좋은지 딱 한 번 손님으로 방문했던 나를 단번에 알아보았고 가을 신상으로 나왔다며 이 옷 저 옷을 여러 벌 꺼내 놓았다.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입어보라고 하는데 “오늘은 옷을 입어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에요. 그냥 보기만 할게요.”하고 말했다. 그녀는 “아가씨, 무슨 일 있었어요?”하고 물었고 나는 아가씨라는 말에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아가씨라는 말은 너무 오랜만에 듣는 것이었다. 마스크를 써서인지 아가씨로 보아준 듯하다.


한바탕 웃은 뒤여서인지 마음이 풀어진 나는 말문이 트였다.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좋아하던 사람과 몇 년 잘 지냈는데 사이가 틀어졌어요.”하고 말했고, 그녀는 “인연이라는 게 틀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잘 지내기도 하는 거지 뭐…”하고 답하며 말끝을 흐렸다. 주인아주머니 말씀대로 관계가 틀어진 사람과 다시 잘 지낼 일은 없을 듯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옷가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마음을 쉰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에게 잠시 기대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마음을 누군가에게 무심히 말할 때와 나를 향해 웃어주는 환함에 기대는 것 말이다.


그렇게 나의 속마음을 밖으로 꺼내어 놓고 환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그때만큼만 이라도 웃을 수 있는 건 사람 인(人) 자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읽은 이기주 작가님의 책에서 사람 인(人) 자의 모양에 대해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사람 인(人) 자의 모양이 시옷이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기대어 있는 형상을 말한다. 신기한 일은 매번 한 사람이 나간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온다는 것이다. 누군가 곁에서 떠나가면 다른 누군가가 온다는 사실은 인연의 방정식 같기도 하다.




인연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에너지처럼 돌고 도는게 아닐까. 나에게서 떠나간 사람은 다른 누군가와 새로운 인연을 맺을 것이고, 누군가 내 마음에서 나간 자리에 다른 사람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간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과 인연이 되고 이별했다. 그럼에도 이별 앞에 익숙할 수 없고 초연해지기란 몹시도 어렵다. 인연을 맺고 매듭짐이 쌓여갈수록 곁에 있던 사람을 보내줄 때 잘 보내주어야겠다고, 그게 그와 함께한 한 시절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는 걸 알아갈 뿐이다.


어떻게 하는 게 잘 보내주는 것일까. 우선 내게서 멀어지려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것, 슬프지만 그가 원하는 데로 흘러갈 수 있도록 바라봐 주는 것, 어디에서라도 잘 지내길 바라는 것, 나도 모르게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도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 좋았던 추억은 마음속 서랍장 맨 밑에 칸에 고이 간직 하는 것, 그와 나 사이에 연결된 사람들에게서 그의 소식을 듣게 되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나마 안부를 전하는 것만이 나에게서 떠나가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전부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도 만남과 이별을 여러 번 겪었다. 글을 써온 삼 년간 알게 된 인연이 참 많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러저러한 모임과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족히 50명은 넘고 100명에는 못미친다. 40여 명 남짓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와는 모임과 수업이 종료되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이 놓아졌다. 두 명과는 본의 아니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후 연락이 끊겼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결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듯하다.


앞으로 몇 명을 더 만나게 되고 이별을 겪을지 알 수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인연이란 유한하지 않아서 앞으로도 이별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언제고 찾아올 거라는 사실이다. 만남과 이별을 겪을 때마다 새삼 깨닫는 게 있다.


시작보다 끝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독서, 글쓰기 모임이나 수업에 참여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시작하는 건 쉽지만 마무리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정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모임이나 수업을 종료하게 되어도 잘 보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강사님이나 장소를 제공하는 책방 대표의 반응은 대부분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간혹 이제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는 듯 감정을 드러내는 분도 있었다.




만남과 이별은 인간관계에서 뗄 레야 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다.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다만 다른 한 가지는 글로 만난 사이는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헤어질 때도 힘이 많이 든다. 얼굴을 자주 마주하는 것보다 글로 다져진 사이는 자주 보지 않아도 각별함이 있다. 글이 가진 힘이기도 할 것이다.


글 벗과의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을 듯하다. 헤어짐을 숱하게 겪는다고 해도. 언제고 다시 이별이 도래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거나 회피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관계의 매듭을 잘 짓는 일이라고 여긴다. 안 좋은 일로 관계의 종지부를 찍어도 함께했던 좋았던 한 시절을 떠올리며 온 마음 다해 그를 잘 보내주는 것 말이다. 아프고 슬프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순간은 분명히 온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힘겨워도 그 시간을 잘 지나오면 된다. 지칠 땐 오늘처럼 잠시 마음을 누군가에게 혹은 어딘가에 기대며. 그렇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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