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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잘못 느끼거나 지각함

by JJ Aug 22. 2022
"열심히만 하면 안 됩니다. 잘해야 합니다!"


 신입 사원 시절 똘망똘망한 두 눈으로 집중을 하며 회의를 하는데, 차장님께서 귀에 거슬리는 말을 연거푸 하셨다. 사실 잘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밑도 끝도 없이 잘해야 한다는 말에 거부감이 요동질 치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면 다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열심히 안 하니까 못하는 거지!'


 소리 내어 반박하진 못했지만, 차장님의 사고방식에 대해 묘한 반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의 모토는 '노력하는 삶을 살자!'였는데, 과정보다는 결과만 강조하는 것 같은 차장님의 사고방식은 나의 신조와 그 방향성이 너무나도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의구심을 참지 못 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차장님의 의중을 좀 더 떠보기로 결심했다.


"차장님, 아까 회의 관련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오, 우리 일 잘하는 JJ, 물어볼 게 뭔데?"
"저기, 다름이 아니라, 아까 회의 중에 '열심히만 하면 안 된다. 잘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던 부분이 신경 쓰여서요."
"응? 어떤 부분이?"
"제 생각엔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잘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 부분을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나 싶어서요."
"아, 회사 입장에서는 열심히만 하면 안 되는 거거든. 무조건 잘해야 하는 거지."
"그럼 열심히 하는 과정이 없더라도, 잘만 하면 되는 건가요?"
"글쎄, 그건 힘들지 않을까? 하하하하"


 궁금증만 더욱 증폭되어 남는 게 없는 대화였다.


'너무 결과 우선 주의 아닌가? 못 마땅하군. 과정을 중요시하는 나의 신념과는 맞지 않아!'


 그렇게 그날의 찌뿌둥한 느낌을 뒤로하고, 나는 내 방식대로 열심히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회사에 헌신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업무 성과들로 회사에 보답했고, 자연스레 회사 내에서 나의 입지는 점점 넓어졌다. 좋은 평판은 나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무형의 선물인 것만 같았다.


'그래, 열심히 하니깐 잘하게 되고, 이렇게 좋은 성과와 명성도 거머쥘 수 있잖아!'


 차장님의 말씀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계속 노력했고,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성장하고 있었다. 나의 눈에 띄는 행보에, 원치 않았던 안티 세력들도 제법 생긴 1년 후쯤 어느 날, 나의 머리를 강하게 후려치는 사건이 동료 선배 직원에 의해 발생한다. 평소 즐거운 마음으로 주변 동료 선배들의 미진한 업무를 두 팔 모두 걷어붙이고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있었던 나에게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난 1년 간 나는 그 누구보다 많이 발전해왔고, 업무적 이해도와 실행력도 누구 못지않게 완벽해졌다. 하지만 나보다 적게는 3년, 많게는 10년 이상을 비슷한 업무에 매진하셨을 계장급, 대리급, 과장급 선배님들의 업무력에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똑같은 업무를 매번 머쓱해하며 물어보시는 계장님, 대리님, 기타 선배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순간 차장님이 과거 회의 시간에 언급하셨던 그 말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게 된 것이었다. 선배들은 열심히만 하고 잘못하다 보니, 업무에 대한 이해력과 성과가 많이 떨어졌고, 시간 또한 많이 소요됐다. 분명 남들보다 열심히 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시는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퇴근을 늦게 하고, 집에 일감을 들고 가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잘하지를 못하니, 부수적인 업무상 피해와 스트레스는 지속적으로 나를 포함한 주변 동료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결사처럼 그들을 도와줬다. 나중에는 나의 소중한 시간을 자꾸만 빼앗기는 것만 같아서 그들의 업무 능력을 향상해주기 위해 더욱 상세하게 답변해주고, 가르쳐줬지만, 타임루프의 함정에 빠진 것처럼 그들은 항상 변함없이 나에게 비슷한 문제에 대한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업무시간 내외를 가리지 않고 시시때때로 그들을 도와줄수록, 뭔가 스스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눈에 보이는 권태의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열심히만 해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구나....'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왜 잘하지 못하는 걸까?'
'나도 언젠가는 저들처럼 저렇게 되려나?'
'어쩌면 이제는 나의 도움을 당연하다는 것으로 인지하는 걸까?'
'비슷한 문제를 반복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피곤하고 지친다.'
'내가 너무 잘 대해줘서 만만한 걸까?'


 어리석었던 나의 아집에 한 숨이 절로 나왔다.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열심히만 하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던 나였기에 그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나보다 사회생활을 경험하셔도 몇 년을 더 하셨을 차장님의 경험 어린 조언이었을 텐데, 사회 나이 한 살도 안된 풋내기가 지 분수도 모르고 떠들어댄 모양새네.'




 홀로 푸념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이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겉으론 밝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지속적으로 사생활이 침해받고 있다는 판단이 서자 그들의 무능함에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결정은 '계속 도움을 주고 계속 가르쳐주자.'였다. 청소부 밥 아저씨의 가르침을 되뇌며 자만을 경계하고, 그들에게 나의 노하우와 일하는 방법들을 지나가는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게끔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고 또 설명해줬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도움들은 그리 큰 빛을 발하지는 못하였다. 내 모든 역량들을 오픈하여 공정하게 경쟁하자는 마음으로 세심하게 전부 가르쳐줬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본인의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어려워서 그런 건지, 귀찮아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스스로 잘하려는 의지의 부재는 그들의 성장을 '열심히'라는 단계에서 멈추게끔 만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습관처럼 필요할 때마다 나를 호출하며 문의하였고,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어려웠던 직장 선배들에게 앵무새처럼 반복적으로 도움을 드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르쳐드렸다. 그렇게 내가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악 순환의 고리는 끊어지기는커녕, 날이 지날수록 점점 더 견고한 형태로 발전해 갔다. 나의 업무력을 통해 나의 입지는 확고해졌지만, 끝날 줄 모르는 질문 세례는 나의 멘탈을 서서히 좀먹고 있었다.


'내가 너무 잘해줘서, 버릇이 그렇게 든 것일까?'
'나를 좀 가만히 놔둬줬으면 좋겠다.'


 다양한 시각과 방법으로 접근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더 이상 획기적인 방향과 출구 등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직장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만 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곤함에 한 숨을 속으로 수백 번은 더 쉬었고, 가끔씩 치솟아 올라오는 울화로 인해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의 보잘것없는 능력으로 직장 관계가 나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나의 분노를 삼키고 또 삼켰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마음이 병들어 가던 나의 첫 직장생활은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이었다. 그때는 그냥 남들처럼 꿋꿋이 참아가며 살아가는 길만 있을 줄 알았었기 때문이다.


내가 못하면, 나는 남의 짐이 되고,
내가 잘하면, 나는 남의 짐을 떠안게 된다.

남의 짐이 안 되려고 살아오다 보니,
오히려 남의 짐들이 나를 짓누른다.

내가 버틸 수 있는 만큼만 남겨놓고,
나머지 짐들은 본래 주인에게 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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